“좋은 책이 없을 때, 억지로 기사 쓸 때는 힘들다”

[ 한국의 전문기자들 ⑬ ] 최재봉 한겨레 문학 담당 기자 “칭찬 일변도 문학기사 벗어나야, 미학과 현실 결합한 작품 아쉬워”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기자가 취재 대상에 연정을 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판적이어야 하는 직업 특성도 있겠거니와, 속사정을 알고 나면 되레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최재봉 한겨레 문학 담당 기자는 그러나 자신의 취재 대상에 마음을 단단히 빼앗겨 있었다. 예술이란 인류의 오래된 유산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문학을 동경해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인 듯 했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최 기자의 ‘문학 예찬’을 잠시 들어보자. “문학만큼 명확하고 깊이 있게 또 감정에 호소하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알려주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러주는 예술이 또 있을까.” 최 기자는 “문학을 좋아하니 문학 담당 기자로 사는 삶이 행복한데, 가장 힘든 순간은 좋은 작품이 없을 때와 그래서 기사를 억지로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올해로 54살인 최 기자의 삶도 문학 언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최 기자는 “우리 또래 대개가 문학을 좋아했다가도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관심이 줄어들기도 하는데 난 고등학생이 돼서도 문집을 만들었다. 창작에 별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학 2학년까지 시도 쓰고 소설도 썼다”고 말했다.

1998년에 한겨레에 입사해서도 사회부와 국제부에 3~4년 있었을 뿐, 1992년부터 계속 문학을 맡아왔다. 자연스레 책을 끼고 살았다.  20년 이상의 베테랑 문학 담당 기자이지만 여전히 성실함이 기사의 질을 담보한다고 보고 있었다. 최 기자는 “기사로 쓸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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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봉 한겨레 기자

 

문학을 향한 애정은 올해 트렌드를 짚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드러났다. 최 기자는 “신문사 내부에서도 신문의 논리로 ‘문학의 트렌드를 잡아내라’고 하는데 문학에서 중요한 건 하나하나의 작품들”이라며 “작품은 작가 개개인이 세계와 대결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기자에게 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즉석에서 부탁했다. 그는 “갑작스럽다”면서도 몇 작품을 꼽았다. 김사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최인훈의 <화두>, 노자의 <도덕경>,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에 대한 최 기자의 애정이 마냥 맹목적인 건 아니다. “문학 기사도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문학 관련 기사는 대개 이 작품과 작가가 어떤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칭찬일변도다. 기사만 보면 한국 문학이 나날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객관적인 전달을 핑계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비판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고, 문학 자체가 변방으로 밀리고 있는데 날을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만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최 기자의 쓴 소리는 이어졌다. 그는 “한국의 주류 문학은 미학주의 때문에 현실적으로 해야 할 역할을 등한시하고 있다”면서 “물론 개개인의 아픔도 중요한 문제겠지만 어떨 땐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너무 한가해보이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학’과 ‘현실’을 잘 결합시키는 작가들로는 시인 송경동과 작가 김연수를 추천했다. “참여문학의 함정이 작품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데, 송경동 시인은 그런 면에서 모범적이다. 김연수 작가도 상당히 고급스럽다고 할까, 현실을 간접적으로 잘 드러낸다.”

존경하는 문인은 <광장>을 쓴 소설가 최인훈. 최 기자는 “지성의 깊이가 느껴진다. 분단 문제를 포함해 한국 사회, 나아가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립, 한일관계에 대해 굉장히 큰 시야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신문사 ‘북 섹션’에 대해 묻자 최 기자는 “한동안 북 섹션 붐이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최 기자는 “지금은 한겨레와 경향신문만 책에 열을 내고 조중동을 필두로 나머지 신문사들은 의도적으로 줄이는 추세다. 책이라는 게 결코 자신들한테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문인들은 진보적이고,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책이 평가받기 힘든 곳이 출판계”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겨레는 관련 지면을 늘리거나 적어도 현상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내가 아쉬운 건 좋은 작품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문학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과 그만큼의 기대가 묻어났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01)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02)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

(03)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

(04)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05)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06)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

(07)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08) 남문희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

(09)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10) 김광현 한국경제 IT전문기자

(11)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

(12)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13) 최재봉 한겨레 문학담당기자

(14)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15)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16)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17)  주성하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