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상 반납? 과학전문기자로서 당연할 일”

[ 한국의 전문기자들 ⑯ ]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논리 구조 세우는데 이공계 경력이 더 도움”

김유리 기자 | yu100@mediatoday.co.kr

2006년 한 기자가 1년 전 수상한 이달의 기자상을 반납했다. 이유는 “기사의 전제가 오류였기 때문에 결론도 오류”라는 것이었다. 기자상을 반납한 주인공은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다. 그는 “과학자로서 당연한 결론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은정 기자를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자상을 반납하게 만든 비운의 기사는 ‘황우석 생명과학 혁명, 한국의 과제’ 제목으로 2005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다. 당시 심사위원회는 “많은 매체가 황우석 교수팀 연구의 현상적인 측면만을 찬양 일변도로 쏟아내는 상황에서 연구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 등을 전문적인 식견으로 오랜 기간 밀착 취재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신망 받던 황우석 박사의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일순간 ‘연구윤리 위반’과 ‘허위’ 논란에 휩싸였다. 황우석 박사를 ‘영웅’의 자리에 올렸던 언론계도 혼란과 반성의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2005년 말 한국과학기자협회는 그동안의 과학 보도가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이슈에 급급했다”며 이를 지양하겠다는 의미로 ‘과학보도 윤리선언’을 발표했다. 이 논란은 2006년 5월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없었고 현재도 없다”는 검찰 발표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은정 기자는 “언론계도 황망해하는 분위기에서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공계에서는 전제가 틀리면 결론도 틀린 것으로 보는 건 과학계에선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우석 박사가 복제소 ‘영롱이’를 발표했을 때부터 취재해왔던 그 과정을 돌이켜봐도 기자상 반납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로서의 자존심과 기자적 양심의 결합이 기자상 자진 반납이라는 행동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이은정 기자는 “기자상 반납으로 ‘황우석 보도’에 대한 한국 언론계의 반성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과학기자나 언론계 전반이 ‘황우석 띄우기’에 대한 정리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후 연구윤리 부분에 대한 취재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며 “과학자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게 위해 매순간 노력해야한다는 교훈도 잊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정 기자는 지난해 발간한 한국과학기자협회 30년사 편찬을 주도했다. 지난 30년간 과학기자는 1~3세대로 분류된다. 1세대는 기사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과학에 관심이 생긴 기자고 2세대는 대학·대학원에서 이공계 전공자가 언론사에 입사하면서 시작한다. 3세대는 과학 전문 잡지 등 출판물을 통해 과학기사를 쓰던 이들이 종합 일간지로 이직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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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이은정 기자는 이 분류에 따르면 2세대에 속한다. 그는 1995년 경향신문 입사 당시 유일한 ‘이공계 출신’이었다. 그보다 그를 주목하게 만든 것은 ‘여기자’라는 점이었다. 수습 2개월  만에 이공계 출신 경력을 살리며 취재한 단독기사로 그는 여성보다 이공계 출신 기자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입사 3년 차 만에 전공을 살려 과학·IT 등을 담당했고 입사 10년 즈음이 지난 2004년 과학전문기자 타이틀을 달았다. 2007년 KBS로 옮겨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다양한 과학기법을 도입해 리포팅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그는 여전히 “과학은 재밌다”고 말하는 과학전문기자다.

다음은 이은정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기자를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었나.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이었는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게 맞지 않아 휴학하고 있었다. 우연히 이공계 석·박사급 전문기자를 뽑는다는 몇몇 중앙일간지 채용 공고를 봤다. ‘아, 저거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바로 학교 재등록하고 졸업하고 사회대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1년 간 언론사 입사 시험 공부를 함께하고 1995년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 처음부터 전문기자의 꿈을 가지고 입사한 건가. 

“당시에는 일반 기업의 이공계 전공자 채용이 거의 없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전문기자’라는 길을 보고 들어온 건 맞다. 근데 그 이후로 한참을 뽑지 않았다. 전문기자는 분야마다 1~2명 있으면 되는건데, 내가 들어갈 때는 그 티오가 더 나지 않았고 전문기자로 크기 위한 루트도 없었다는 건 함정이라고 할까.(웃음)”

- 그럼 일반기자로 입사해서 경찰서 수습부터 거친 건가. 힘들진 않았나.

“입사 때 남들은 ‘이공계 전공’이라는 것보다 ‘여자’라는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춰서 나를 봤다. 입사 동기 10명 중 이공계 출신도 나 혼자, 여자도 나 혼자였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사실 힘들다는 경찰 수습 기간은 대학원 때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적응이 돼 있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이공계 출신으로서 기자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압박이 혼자 심했던 것 같다.”

- 그 압박은 어떻게 이겨냈나. 

“1월 9일 입사하고 2월에 ‘구강청정제 음주단속 사건’으로 첫 단독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기사는 구강청정체 속에 포함된 ‘에틸 알코올’을 음주측정기가 술로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원 때 시약병을 보던 버릇이 단독 기사로 이어진 것이어서 더욱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공계 출신도 기사를 쓸 수 있구나.”

- 그래도 기사 작성은 어렵지 않았나. 

“옛날 일이지만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반을 했었다. 글 쓰는 것엔 원래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기사 문장은 미사여구를 얼마나 잘 쓰냐가 아니다. 방대한 취재 내용 속에서 뼈와 살이 될 만한 것을 발라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이는 귀납적 연구를 하는 이공계에서 숱하게 해왔던 방법이다. 오히려 글의 논리 구조를 세우는 데는 이공계 경력이 더 도움이 됐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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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 전문기자로 활동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2004년부터 ‘과학전문기자’ 호칭으로 기사를 썼다. 기자가 되고 10년차 됐을 때였다. 사회부·경제부에서 일반 기자수업을 3년 정도 거치고 1998년부터 IT와 인터넷, 전자 쪽으로 과학 분야 취재를 시작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시점이어서 문제는 없었다고 봤다. 대학원은 2005년 연구윤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 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던 거 같다. 

“전문기자보다는 기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전문기자가 되는 길은 좋은 기자가 먼저돼야 한다. ‘전문기자’가 다음단계라는 의미 보다는 기자의 보편적인 자질을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기사를 선별하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전문기자는 그런 바탕 위에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계속 공부해가면서 쌓이는 것이다.”

- 2004년부터는 과학과 의학 분야를 집중 취재했다고 하는데, 소수 분야만 보면 솔직히 지겹지 않은지. 

“의외로 과학은 다양한 사회 문제와 연결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는 한 달 간 매일 방송에서 원자력과 원자력 발전에 대해 설명했다. 고리·월성 원전에 대한 설명도 하고 나로호 발사나 수능의 과학 문제 오류, 한미원자력협정 등도 과학전문기자의 취재 영역이다. 경제, 산업과 교육, 외교 등 사회 다방면과 연결된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 전문기자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전문기자의 역할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때 ‘내가 생각하는 길은 이런 것’이라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만큼의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고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기사에 전문가 멘트로 기사의 공신력을 높이려는 국내 언론 풍토에서는 전문기자가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 전문기자를 염두에 두고 입사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언론계의 전문기자제도는 어떤지.

“전문기자 양성은 입사 때만 해도 언론사 사명 혹은 숙제 같은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초창기 과학·의학 등 특정 분야의 석·박사를 전문기자로 채용했는데 여전히 몇몇 분야만 전문기자로 인정해준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기자를 양성한다는 마인드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가 필요하는 말인가. 

“그렇다. 세분화된 분야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미 각각 영역에서는 전문기자 호칭을 달지 않았을 뿐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기자들이 보인다.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언론 환경이 뒷받침 돼야 한다. 외국은 기자의 생각을 담은 칼럼을 쓰는데 우리는 일반 기사에도 전문가 멘트를 붙여야 ‘공신력’을 인정받는다. 이런 부분도 이제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언론 환경이 바뀌면서 어뷰징 기사들이 전문기자들의 기사를 가려버리는데, 그런 부분은 아쉽지 않나. 

“기자 10년, 전문기자 10년이다. 기사 한 꼭지에 대한 반향으로 일희일비할 때는 아니다. ‘KBS 뉴스9’의 영향력을 믿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전반으로 보면 아쉽다. 당장 나부터도 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해 보는데 기사를 봤다고 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들어가면 못 본 좋은 기사들이 수두룩 하다. 안타깝긴 한데, 방법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 2007년 KBS로 옮겼는데 방송 리포트에서 전문성을 살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과학전문기자로서 ‘과학을 어떻게 하면 쉽게 대중에게 알리느냐’하는 점이 고민인데 방송사로 옮기고 해결책을 찾은 거 같다. 증강현설(AR), 가상현실(VR) 등 과학기술을 리포팅에 적극 도입하면서 리포트가 새롭고 풍부해졌다. 또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도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 방송에 쓸 수 있다. 과학을 텍스트만으로 전달할 때보다 이해하기도 쉽고 리포트 하기도 좋은 것 같다.”

-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세월호 인양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데 반대 하는 쪽도 있다. 어떻게 보는지.

“세월호 인양 여부에 대한 답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국내외의 선박 인양 사례가 풍부하지 못해 어느 한 쪽으로 100%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한다. 과학은 정책이 결정되면 기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뿐이다. 과학으로 모든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착각이다.”

- 세월호 참사를 과학자의 입장에서 돌아본다면.

“1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다. 민관군 합동구조본부는 당시 미국의 전문업체 비디오레이의 무인잠수로봇을 세월호 사고 해역에 두 번 투입했다. 안타까운 것은 비디오레이가 진도 해역처럼 물살이 빠른 곳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적극적으로 개발한 무인해저탐사 장비 크랩스터가 국내 해저지형 탐사에 훨씬 유용했을 텐데 비디오레이 투입 실패 후 조명을 못 받았다. 정책결정권자들이 각 장비에 대한 정확한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련 장비를 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은 안타깝다.”

- 세월호 참사 당시 다이빙벨 논란도 있었는데 그 논란은 어떻게 보나.

“다이빙벨 논란도 마찬가지다. 다이빙벨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빨리 시도해보고 결과를 냈어야 한다. 안되면 다른 장비를 투입하면 되는 거고. 초기에 논쟁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다른 다이빙벨을 가지고 오면서 결국 시간만 끈 거 아닌가. 과학적으로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걸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 결국은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하는 정책결정권자들의 문제인가.

“세월호 참사 당시에 모든 과학적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과학기술을 언제, 얼마 만큼 참고 내지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없다. 아무래도 정책결정권자들의 이공계 지식이 부족하다보니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 해외에서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과학이 활용되는 비율이 높나.

“영국에는 과학철학이라고 그 분야만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가령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어떤 수준으로 대비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영국은 이런 경우 최대한의 위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해 자국민을 안심시킨다. 우리나라는 ‘광우병 사태’ 때 정반대의 예를 보여줬다. ‘광우병’의 위험을 모르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안전하다’, ‘위험하다’ 양극단에서 싸우기만 했다. 이런 경우 ‘어떤 정책 결정을 해야한다’는 가이드라인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다.”

- 이런 문제는 왜 생기고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이 수입돼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과학기술은 기술 분야에서 따로 놀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부분이 굉장히 약하다. 인문학과 과학을 연결하는 분야, 이에 대한 개발이 더 필요하다. 한국 과학자들도 연구 성과에만 국한되지 말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과학 다큐 같은 호흡이 긴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과학계의 ‘시사기획 창’ 같은 거? 과학을 테마로 해서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과학에 접할 수 이는 그런 부분. 해보고 싶다.”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01)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02)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

(03)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

(04)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05)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06)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

(07)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08) 남문희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

(09)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10) 김광현 한국경제 IT전문기자

(11)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

(12)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13) 최재봉 한겨레 문학담당기자

(14)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15)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16)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17)  주성하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