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사만 26년 “재벌과 어울리되 비판 주저마라”

[ 한국의 전문기자들 ① ]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1988년 창간한 한겨레 공채 1기로 입사한 곽정수(53) 기자는 한국 언론 최초의 대기업 전문기자였다. 올해로 경제부 기자만 24년차다. 기자를 제너럴리스트(Genaralist)로 키워왔던 한국 언론에서 드문 경력이다.

지난달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곽 기자는 기자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자의 부서를 자주 바꿔버리는 언론사의 인사 관행을 바꾸는 것과 함께 언론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기자는 “기자가 꼭 써야 한다고 보는 사안에 대해 회사 방침과 맞지 않다거나 광고주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사를 못 쓰게 한다면 전문성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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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사진제공=곽정수 기자

곽 기자는 한겨레가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복권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자 대기업 전문 기자를 반납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곽 기자의 관심은 ‘재벌’이다. 곽 기자는 재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 재벌의 가족소유 경영체제에서도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글로벌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재벌개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곽 기자는 “독일의 가족 경영 기업들이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서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박수의 대상인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곽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대기업 전문기자’ 타이틀을 처음 달았던 시기는 언젠가.
“2001년 봄 당시 편집국장의 지시로 동료들과 함께 전문기자 시스템에 대해 연구했고 그해 도입됐다. 한겨레 첫 전문기자는 조홍섭 환경 전문기지다. 나는 연수가 끝난 2002년 대기업 전문기자로 임명됐다. 전문기자가 되기 전부터 경제 분야를 계속 다뤄왔다. 처음에는 재벌 전문기자를 하려고 했는데 편집국장이 재벌이라는 용어보다는 대기업이 낫다고 했다.”

- 입사 이후에 계속 경제부에 있었던 건가. 
“한겨레 공채 1기로 입사했는데 사회부와 편집부를 3년 정도 거친 것을 제외하고는 27년 동안 경제부에만 있었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에는 매년 소속 부서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 부서가 자주 바뀌면 전문성을 갖기 굉장히 힘들다. 난 회사가 의도했다고 보진 않는데 인사 면에선 결과적으로 혜택은 입은 셈이다.”

- 기자가 전문성을 갖추려면 인사 문제 외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자가 꼭 써야 한다고 보는 사안에 대해 회사 방침과 맞지 않다거나 광고주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사를 못 쓰게 한다면 전문성 살릴 수 있겠나. 기자의 전문성은 권력과 자본, 광고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언론의 독립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난 한겨레가 어느 언론보다 독립성을 구현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에 전문기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재벌 문제기 때문에 그랬다.”

- 언론사가 기자의 전문성을 중요시한다면서도 다른 부서로 자주 발령되는 이유는 뭘까.  
“과거엔 기자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제너럴리스트여서는 신문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일부는 제너럴리스트고, 나머지는 전부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 나이 70,80세에도 현장에서 뛰는 해외 기자들의 사례를 전설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라고 불가능하지 않다.”

- 출입처가 정해져 있나.
“재벌 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시 출입처이고 삼성이나 현대차 등 재벌들도 두루 맡는다. 한겨레에는 ‘출입처에 얽매이지 말자’는 전통이 있다. 꼭 재벌문제가 아니더라도 재벌과 관련된 금융이나 정책 기사로 자유롭게 쓴다. 이건 다른 경제부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 폐쇄적인 대기업에 내부 취재원을 만들기가 수월치는 않을 것 같다. 
“주 취재원이 사람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가진 내부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신뢰가 쌓여야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비판 기사를 쓴다. 기자는 ‘관계맺기’와 ‘비판’이라는 일상적 모순 속에서 산다. 재벌을 취재하는 후배 기자들에게는 ‘어울리는 걸 주저하지 말고, 비판하는 것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울리지 않으면 취재가 안 되고, 어울렸다고 비판하지 않으면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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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오찬을 가졌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 대기업에 대해 많이 비판하니 당하는 쪽에서는 곽 기자를 많이 관리하려고 했을 것 같다.
“아무리 술을 많이 사줘도 비판 기사를 쓰니 본의 아니게 ‘저 사람, 인간성 안 좋다’는 말도 들었다. 술 먹을 때는 다 이해한다는 듯 하다가 기사는 정반대로 쓰니까. 기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취재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나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어디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어떤 기업은 아예 가까워지려는 노력 자체를 안 하더라. 무시하는 거다. ‘저 기자와 이야기해봤자 기업 정보만 나가지 득 될 게 없다’는 식이다.”

- 대기업을 오래 취재했으니 궁금한 걸 물어보겠다. 이건희 회장은 어떤 상탠가.
“이건희 회장이 죽고 사는 문제는 의사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다. 경제 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경영자로서의 수명은 끝났다.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경영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삼성에 있는 사람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정확한 워딩이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겠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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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14년 9월20일자 머리기사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박 회장의 말처럼 탈세나 매임 등 고질적인 병폐가 있는 재벌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재벌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은 ‘재벌이 잘 돼야 한국사회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내부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에는 재벌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 커졌다. 박용만 의장은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말한 것이고, 언론과 사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빠르게 변화해달라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 가족소유 경영체제에서 변화가 가능한가. 
“한국사회에는 재벌에 대한 두 가지 편견이 있다. 한국 경제가 가족 소유경영을 바탕으로 한 재벌에 의해 발전했으니 공격하는 건 잘못됐다는 주장과 재벌 체제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다. 난 둘 다 잘못됐다고 본다. 독일이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히든 챔피언’이 있기 때문인데 이 기업들의 출발은 모두 가족소유기업이었다. 이 지배구조는 안정된 리더십이라는 장점이 있다.”

- 독일의 기업들은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만큼 사회 곳곳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독일의 기업들이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박수의 대상인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재벌의 과제다.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됐을 땐 탈세나 배임을 저지른 총수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자고 목소리 높이지만 벌써부터 사면 복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에서 이런 분위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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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개혁가능성이 높은 재벌은 어디라고 보나. 
“재벌개혁 과제 중 소유 지배 구조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문제가 없는 기업은 아니지만 몇 년간 총수 관련 문제로 비판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 언론계에는 한겨레가 일간지 중 삼성 광고 비중이 제일 높다는 말이 있다. 
“삼성 뿐 아니라 대기업 광고 의존도가 높다. 재벌과 광고로부터 독립하는 언론을 추구하는 한겨레의 한계이며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광고 의존도가 높으면 기자들의 자기검열 분위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를 아예 받지 말자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불가능할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광고에 종속되지만 않으면 된다.”

- 지난해 삼성이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올림에 협상을 제안했다고 쓴 기사에 대해 반올림 측은 오보라고 주장했다. 재벌을 비판해온 기자도 결국 재벌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이 제안한 적이 없어야 오보가 된다. 반올림은 내가 삼성을 비판하더니 삼성의 언론플레이에 협조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기자라면 사실을 쓰는 게 맞다. 언론플레이라고 해서 쓰지 않아야 하나. 그렇다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기자가 아니라 운동가다. 그리고 반올림과 관계하는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해 반올림의 반응에 대해 다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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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13년 1월9일자 1면 기사

 

- 삼성을 출입하던 한겨레 기자가 삼성으로 옮겨갔다. 
“원론적으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지만 어제까지 동료였던 기자가 오늘은 출입처였던 기업의 홍보실 간부로 가서 ‘기자님’이라고 하면 옮겨간 친구도 얼마나 힘이 들 것이며, 동료 기자도 얼마나 당혹스럽겠나.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 기자들을 데려가는 지에 대해 기업들에 묻고 싶다. 좋게 말하면 기업이 사회 여론에 둔감하니 여론을 중시하는 기자를 데려다가 자기 변화의 촉매제로 쓰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론의 압력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데려간다. 기자를 속해 있었던 언론사 로비용으로 쓰려는 목적이라면 정말 바람직하지 않고 옮겨간 기자도 불행하다.”

- 대기업을 오래 취재했는데 이직 제안 받은 적 있나. 
“고민할 일이 없었다. 한번 쯤 있었을 법도 한데 왜 없었는지 나도 궁금하다.”(웃음)

- 다시 대기업 전문기자로 되고 싶은 생각이 있나.
“당연히 있다. 전문기자와 선임기자는 다르다. 전자는 전문성이 있는 기자로 임명한 것이고, 후자는 데스크 경험 등 일정 조건을 갖춘 시니어 기자들에 대해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최근 몇 년 동안 전문기자를 뽑지 않았다.”

- 한겨레가 전문기자를 뽑지 않는 이유는. 
“부담스러워 그러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임명한 전문기자가 자기 발전 측면에서 정체돼 있거나 그 분야에서 더 잘하는 후배 기자가 나타난다면 언론사는 전문기자를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문제지만 전문기자 제도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행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전문기자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면 기자의 전문성을 포기한 것이다. 전문기자들도 내부 경쟁을 용인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01)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02)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

(03)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

(04)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05)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06)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

(07)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08) 남문희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

(09)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10) 김광현 한국경제 IT전문기자

(11)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

(12)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13) 최재봉 한겨레 문학담당기자

(14)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15)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16)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17)  주성하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