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08) 끼워팔기 상품으로 전락한 방송, 승자는 없다
콘텐츠 생태계 붕괴, 저가 출혈경쟁 고착화… 가입자 쟁탈전·산업논리에 방송 공공성은 ‘뒷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teenkjk@mediatoday.co.kr

통신이 방송을 삼키고 있다. 2014년 12월 기준 전체 유료방송가입자 100명 중 46명은 통신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나머지 54명은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시청한다. 이 비율은 조만간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통신의 추격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에는 100명 중 72명이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시청했으며 28명만이 통신을 통해 방송을 시청했다. 3배 가량의 격차가 4년 사이에 좁혀진 것이다. 유료방송의 시장 점유율이 전체 방송시장의 90%를 넘긴 가운데 지난해 기준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율은 6.8%에 그쳤다.

IPTV는 결합상품을 내세운 차별화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초고속인터넷과 이동전화 등 통신상품을 IPTV와 묶음판매하는 방식이다. KT의 경우 위성방송을 묶음판매하는 OTS 전략을 썼다. 방송 단일상품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케이블TV는 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4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서 “KT와 SK의 결합상품 가입자 유치 경쟁은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유료방송 시장은 방송통신 결합상품 가입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힐 정도다.

이용자의 시청행태 변화 역시 IPTV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단방향 서비스 위주의 기존 방송시장에서 IPTV는 쌍방향 서비스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본방’을 시청하지 않는 방송 이용자의 이용행태 변화와 맞물려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유료방송사업자들의 VOD 매출액이 2012년 2986억 원에서 2013년 4331억 원으로 45%증가했다. 2013년 기준 IPTV 3사의 VOD 수신료 매출이 전체 유료방송시장에서 67.7%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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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열 유료방송 가입자 점유율. KCTA통계자료 재가공.

문제는 방송시장이 IPTV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용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홍보팀장은 “방송 콘텐츠 제작은 경쟁이 심하고 기대이익도 낮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방송 콘텐츠를 서비스 경쟁의 도구로 활용하게 됐고, 결합상품 위주의 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과적으로 시청자 입장에서는 방송은 결합상품을 통하면 무료가 되는 값싼 상품이라고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통위 역시 “결합판매 증가로 유료방송 평균요금 수준이 하락하는 추세가 단기적으로는 PP에게 배분될 프로그램 사용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유료방송 산업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유료방송 뿐 아니라 지상파 플랫폼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통신사가 IPTV 시장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통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방송의 공영성, 문화콘텐츠 등의 특성을 융합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유통이 주가 된 ‘밴드’ 역할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지상파와 케이블업계는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문화산업과 고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에 이바지한다”면서 “반면 통신사들은 콘텐츠에 대한 재투자 의지가 없다. 그 결과 상업적 콘텐츠 판매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방송의 상업화를 부추겨 시청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방송의 통신종속은 국내 콘텐츠 산업 진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게 심 교수의 견해다. “최근 방송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피해가 발생하지만 통신사 입장에서는 외국 콘텐츠를 가져다 쓰면 된다. 국내 콘텐츠시장이 망가지는 것이 이익과 결부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폰 보조금 상한 25만~35만원 내에서 수시 조정

▲ 통신사들은 결합상품 전략을 통해 빠른 속도로 유료방송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사진은 통신 대리점. ⓒ연합뉴스

케이블 업계는 그나마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는 상황이지만 직접 수신율이 6~7%대로 낮은 지상파 플랫폼은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과거 지상파는 독점적 플랫폼이었으나 케이블과 IPTV등 다양한 플랫폼의 도입으로 이전처럼 독자적인 플랫폼으로서 지위를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면서 “최근에는 콘텐츠마저 유료방송의 트렌드를 좇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통신업계는 700MHz 주파수 할당을 두고도 지상파와 대립하고 있다. 표면적인 갈등은 이동통신 용도냐 지상파 UHD 서비스 용도냐를 두고 벌어지고 있지만 IPTV를 소유한 통신업계가 지상파 방송 플랫폼을 견제하는 목적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상진 SBS뉴미디어전략팀 차장은 “부수적인 측면에서는 통신사가 IPTV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지상파 플랫폼의 퀄리티 향상을 견제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IPTV와 케이블업계의 출혈경쟁 과정에서 유료방송 산업 전체의 저임금 간접고용구조가 고착화되기도 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케이블업계의 저가경쟁 역시 문제였지만 IPTV 도입 이후 경쟁이 더욱 심화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G유플러스 등의 인터넷 설치기사인 장연의, 강세웅씨는 서울 명동에 위치한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경재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부장은 “설치기사들은 일주일에 70~80시간 일한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금은 100만원 후반에서 200만원 초반정도지만 직접 부담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지부장은 “인터넷 설치에 필요한 장비를 일일이 구입해야 한다. 기름값과 식비도 부담해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차감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결과적으로 서비스의 질에도 영향을 미쳐 시청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대표는 “적절한 노동시간이 보장될 때 노동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산업에서나 마찬가지”라며 “부당한 노동관계는 결국 시청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설명, 서비스의 적절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하며 설치 및 AS 역시 적절한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IPTV 업계의 노동문제는 IPTV를 소유한 통신사가 재벌기업이라는 점에서 케이블업계의 노동문제보다 현안을 복잡하게 만든다. 전규찬 대표는 “오늘날 벌어지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케이블업체였던 씨앤앰보다 풀기 힘들 것”이라며 “LG와 SK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기업이다. 그룹 내 계열사 노동문제, 전경련의 입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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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강세웅 조직부장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장연의 연대팀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방송의 통신종속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IPTV와 관련한 정책적 변수는 통신사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3년 일몰제로 도입하기로 여야가 합의해 시장독점에 대한 실효성있는 규제도입이 물 건너간 상황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동일서비스에 동일한 규제를 한다는 원칙 아래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의 시장독점을 전체 시장의 3분의 1로 통합 규제하는 내용이다.

황성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KT는 33%선까지는 다소간의 여유가 있고, 산간오지 등 위성방송만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의 가입자는 제외되며, 합산규제 조항이 3년 후 일몰된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도입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은 유료방송의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김용배 팀장은 “통신사 입장에서는 보조금의 활용처가 막히게 돼 IPTV 등 부가서비스를 확대하는 전략을 써 저가경쟁이 심해졌다고 본다”면서 “실제 ‘방송 공짜’등의 마케팅을 하는 전단지가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통위가 대책마련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방통위는 4월까지 ‘결합상품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규제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결합상품을 전담하는 팀을 운영해 자체적인 단속활동도 벌일 예정이다. 그러나 단말기유통법에 대한 단속이 있음에도 불법보조금 지급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단속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긴 어렵다는 관측도 많다.

방송의 통신종속 문제 해결을 위해 단속과 규제보다는 전반적 방송정책 방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규찬 대표는 “방통위는 박근혜 정권 뿐 아니라 과거 이명박, 노무현 정권 때부터 방송을 시장측면에서 접근하고 산업으로서 진흥해야 한다는 논리에 매몰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대표는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고 방송의 공영성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상민 교수는 “규제를 하나씩 만든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네트워크중심의 미디어 정책 철학을 콘텐츠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장은 통신시장이 거대하고 수익이 된다는 이유로 통신 분야만 활성화하는데, 이는 미디어 산업을 저해한다. 콘텐츠가 네트워크의 도구여서는 안 된다. 시장 내에서 콘텐츠와 네트워크가 최대한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teenkj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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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08)
○ 플랫폼 잃고 콘텐츠도 부실, 일개 PP로 전락한 지상파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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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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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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