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편견 확대재생산, 주류 언론에 묻힌 소수자 목소리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미국에서 17살 트렌스젠더 소녀가 자살했다. 가족들은 소녀의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종교적 이유였다. 그녀는 부모에 대한 절망이 담긴 유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기고 지난해 세밑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그녀를 조슈아 알콘(Josh Alcorn)이라고 불렀고, 외신은 리라 알콘(Leelah Alcorn)이라 칭했다. 왜 일까. 전자는 소녀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이고 후자는 성 정체성에 맞춰 지은 이름이었다.

인터넷 매체 ‘ㅍㅍㅅㅅ’ 필자 윤지만씨는 “미국 언론에 비해 한국 언론은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무신경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 언론은 철저하게 ‘다수’ 대중 입장에서 소재를 다뤄, 소수자가 봤을 때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언론의 무감수성이 소수자에게는 ‘흉기’가 될 수 있는 뜻이다.

소수자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무감수성은 구조에 의해 배태된다. 출입처 중심 문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기사 생산, 선정적 사건·사고에 치우친 관심 등은 소수자 보도를 축소하고 외면하는 내부 요인으로 꼽힌다.

종합일간지 A기자는 “출입처에 있다 보면 앉아서 이슈를 찾게 되고 동성애·여성·장애인을 주제로 한 보도 역시 짧은 호흡 속에서 수치나 통계로서만 접하게 된다”며 “결국 긴 맥락으로 풀어내지 못하게 돼 단편적인 사건 보도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B기자는 “발제를 해도 데스크에선 별 관심이 없다”며 “소수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미미하기 때문에 데스크들도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경우 소수자 목소리를 제대로 담기 어려울 뿐더러 기자 개인의 관심에 따라 보도 여부가 결정되는 폐해를 낳는다. 주간지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는 앞서 언급한 요인을 거론하며 “대다수 언론은 소수자 문제를 기자 개인에게 맡겨두곤 한다. 기자가 소수자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가 기사 생산을 결정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소수자 보도 기준이 되는 ‘인권보도준칙’은 지난 2011년 제정됐으나 실효성이 떨어졌다. 국가인권위는 △속보 경쟁 체제 △지면과 영상 분량 제한 △관련기관 및 언론사 내 교육부재 △ 관습화한 인권교육 등이 원인이라고 보고서(2013년)를 통해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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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라 알콘 (Leelah Alcorn) SNS에 올라온 사진

이러한 언론의 무감수성은 특정한 프레임을 만든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전히 ‘장바구니 경제’, ‘배추 값 폭락’ 같은 뉴스 인터뷰에는 여성이 나오고, 거시 경제를 이야기할 때 인터뷰는 남성 위주”라며 “한국 언론은 여전히 고정된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수가 지닌 편견과 선입견을 언론이 확대 재생산한다는 분석이다.

‘도가니’, ‘염전노예’ 등 장애인이 특정 지역에 격리 감금됐던 사건을 다루는 보도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이 두드러졌다. 장애인 전문 매체 <비마이너> 기자들은 미디어오늘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기존 언론 보도는 특정한 악마(시설장)와 특정한 피해자 문제로 국한해 구조적 차별에 놓여있는 장애인의 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장애인을 시혜 및 동정의 대상으로 규정하곤 한다. 이 매체 기자들은 “자선 프로그램을 통해 (사실상) 전시되는, 동정의 대상으로서 불쌍한 장애인의 모습을 부각하거나 신체적 어려움에도 비장애인 못지않은 성취를 이뤄낸 소수 장애인의 ‘영웅적인’ 성공담에 치중한다”고 했다.

이러한 프레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권리를 향유하며 사회에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장애인의 삶, 장애인의 대안적 문화, 삶의 양식에 대한 색다른 소개 등이 언론에서 누락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 관점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언론도 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장애인 전문 매체 <비마이너> 등의 매체들은 소수자 운동이나 시민사회 운동 진영에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재정난 등은 고민거리다.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은 “독자들에게 자발적인 정기구독료를 요청하고는 있지만 기사는 무료로 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결국 후원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며 “재정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인터넷 환경의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뉴스 콘텐츠를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수자 문제가 정치 의제화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데서 언론이 선도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윤동욱 기자는 “언론이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뉴스 수요자의 교양 수준에 만족하는 데 머문다면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처럼 소수자 반대편의 목소리가 관철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말한 A기자는 “소수자 이슈에 대한 보도 가이드라인이 구체화할 수 있도록 내부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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