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피라미드 수직적 조직 문화, 폐 쇄적인 출입처 제도도 조기 퇴출 요인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언론사 인력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50세 전후 연차 20년 이상의 ‘노(老) 기자’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언론사는 연차 높은 기자들이 많아지는 역피라미드 구조로 변했다. 방송사들의 경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방송 준비를 위해 인력을 대거 채용했다. MBC의 경우 당시 2년 동안 다섯 기수의 인력이 들어오기도 했다. 국장 대우, 부장 대우란 타이틀을 단  기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참 기자들이 저널리스트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데는 장애물이 많다.

고참 기자들은 기자의 연차가 쌓일수록 현장과 멀어지는 언론계 풍토에 대체로 불만이 많았다. 언론사가 이 기자들을 현장에서 제대로 뛸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풍부한 네트워크와 현장 경험을 가진 고참 기자들을 제대로 활용하면 저널리즘의 질적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환경전문기자인 SBS 박수택 논설위원은 “한국 언론계는 나이가 들면 현장을 떠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 관행이 우리 언론계 풍토에 ‘바람직한가’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 논설위원은 “이 관행을 깨보자고 90년대부터 시도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정착되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기자가 현장에 없다’란 주제가 되풀이되는 건 낭비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멀어지는 관행이 자리 잡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각자 달리 진단했다. 하지만 대체로 한국 언론계의 특수한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었다. CBS 변상욱 콘텐츠본부장은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중앙 언론사가 11~12개 남짓 되면서 언론계에는 ‘우리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국회 반장과 검찰 1진, 시경 살, 청와대 1진 등 주요 자리에는 대충 비슷한 기수를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기수보다 나이 많은 기자를 보내면 기자단에 눈치가 보이고 또한 상당수가 팀으로 움직이다 보니 나이 많은 기자들은 점점 밀려나게 된다. 이들이 갈 수 있는 출입처는 국방부나 보건복지부, 문화 분야 등 몇 군 데 없다”고 했다.

변 본부장은 “고참 기자들을 주요 자리에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국회 반장이나 시경 캡 같은 요직들은 젊은 기자들도 가고 싶어 하는 자리인데 우리가 간다고 하면 좋아하겠느냐”라며 “50살 즈음에 시경 캡을 맡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로 고사했다”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일선 기자의 보고와 데스크의 지시가 일상화된 언론사의 상명하복식 문화가 영항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미디어출판국장은 “한국 사회는 위계질서와 권위를 많이 따지다보니 위에서 지시내리는 사람은 부서에서 가장 고참이어야 한다는 사고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논설위원은 “현장에서 뛰는 언론인의 본분에 끝까지 충실히 임하는 태도가 회사로나 개인적으로나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허연 기자가 현장을 뛴다고 하면 ‘오죽 변변치 못해 그럴까’라며 무능력하게 본다”고 말했다. 박 논설위원은 “취재·보도로 정년을 맞거나 그 이후에도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기보다는 부장, 국장, 이사, 임원, 사장, 그 다음은 이를 발판삼아 정계로 진출하는 행로를 밟아야 유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언론사들도 고참 기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유능한 기자의를 이유없이 묵히지 말자는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고 있는 인력 적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방안은 선임기자·전문기자 제도다.

CBS는 2012년부터 논설위원을 제외한 모든 기자들에게 출입처를 맡겼다. 보도국장을 거친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현장 기자로 돌아갔다. 이 기자의 출입처는 ‘여의도’다. 특정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고, 그 동안 자신이 쌓은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총동원해야 한다.

선임기자·전문기자 타이틀을 달지 않고 현장에 나가는 기자들도 있다.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부장과 부장 직무대행을 했던 두 기자가 각각 시민사회부와 정치부의 일선 기자로 나갔다. 경남일보도 편집국장을 거친 뒤 지역 주재기자나 일선 취재기자로 돌아간 기자가 있다.

하지만 선임기자와 전문기자 제도가 ‘노기자’들의 단순한 자리보전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곽정수 한겨레 경제 선임기자는 “언론계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비슷하게 연조가 높은 기자들의 비중이 큰 항아리 구조다. 한겨레 기자들의 평균 연령이 43세고 전문기자가 5명, 선임기자만 20~30명 된다”고 말했다.

곽 선임기자는 “이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이런 점에서 언론사의 사활적인 관건인데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한겨레는 2008~2009년 마지막으로 전문기자를 뽑는 심사를 했으나 그 뒤로 하지 않았고, 선임기자 심사제도는 올해 없어져 일정 연조를 넘기면 무조건 선임기자 타이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기자는 “본인이 원치 않아도 걸러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당사자들은 반발하겠지만 언론사에는 당근과 채찍을 통한 적당한 긴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 한 고참 기자는 “나이 든 기자들은 관리직으로 보내거나 해설위원으로 가는데 잉여 취급 당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았거나 경영진의 눈 밖에 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한직으로 밀린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자타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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