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MB는 왜 PD수첩을 법정에 세웠나

조능희 전 PD수첩 CP “PD수첩에 토론하자던 노무현, 소송 걸라는 이명박”

최훈길 기자  chamnamu@mediatoday.co.kr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 이어 MBC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방송은 어느 정도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한 것”이라며 “공적 업무에 대한 비판 보도의 명예훼손죄 심사는 사적 영역의 심사 기준과 다르며 언론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4월 첫 방송이 시작된지 32개월만의 결정이다.

지난 3일에는 한국언론정보학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서울 서강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언론 보도와 PD수첩 재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는 주제의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패널로 참석한 조능희 전 <PD수첩> CP는 32개월간 겪은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그는 △조선·중앙·동아일보와 <PD수첩>의 ‘악연’ △촛불 집회 이후 조중동의 변모 △김미화·김제동 하차 논란 등을 통해 본 KBS와 다른 MBC 조직 문화 △국내 언론학계의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특히 그는 참여정부 당시 <PD수첩> 보도에 대해 청와대쪽에서 “PD와 토론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언을 전했다는 ‘비화’를 공개하며, 비판 보도에 소송으로 대응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조하기도 했다. 또 지난 32개월간 본인의 핸드폰으로 중요한 얘기를 하지 못한 사정도 밝혔다. 그럼에도 <PD수첩>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여전히 ‘수난사’는 이어질 전망이다.

미디어오늘은 <PD수첩> 재판의 저널리즘적 고민을 나누고자, 그동안 <PD수첩> 소송을 겪은 조능희 전 CP의 발언을 일부 보완해 그의 육성 그대로 전한다.

92432_103089_107

▲ 전 제작진들이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춘근 PD, 조능희 전 CP(가운데), 송일준 PD(앞줄 맨왼쪽부터)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동안 어떻게 견뎠나’는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질문을 듣고 코끝이 시큼했습니다. 지난 32개월을 정리 보니 제가 참 별일을 다 겪은 것 같습니다. 우선, 항소심 최후 진술하면서 격해진 게 생각납니다. 최후 진술을 하며 소송 과정에서 김보슬 PD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송일준 선배의 장인이 돌아가신 것을 얘기했습니다. 김보슬 PD와 김은희 작가가 법정에서 눈물을 보여 저도 울컥했답니다.

이후 항소심 선고도 나고, 오늘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언론 보도와 PD수첩 재판,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라는 토론회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 토론회를 준비하며 ‘조중동은 왜 PD수첩을 법정에 세웠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PD수첩이 그동안 조중동에게 무엇을 했는지부터 생각이 나더군요. 조중동의 족벌 언론체제를 최초로 집중 보도한 게 PD수첩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몇몇 PD수첩 선배들이 보도를 했는데 이 방송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쇼크 그 자체였습니다.

그 당시 PD수첩은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제목으로 친일인명사전 관련 보도를 했는데, 이 보도로 조중동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족벌언론의 사주들이 사실상 다 친일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황우석 논란 때 조중동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방송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조중동 기자였던 어느 분이 회사를 나와 인터넷 신문사를 창간하면서 ‘PD수첩이 당시 과도하게 조중동을 비판했다’는 칼럼을 쓰신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촛불 시위 당시 조중동이 엄청나게 역풍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중동 회사 현관에 쓰레기가 쌓였을 때가 가장 큰 조중동의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 어느 고등학생 학생이 ‘조중동이라서’라는 말을 했는데, ‘조중동’이라는 이름이 어린 학생에게도 각인된 것은 사회 정의상 바람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촛불 집회 당시 조중동 현관이 쓰레기 더미로 휩싸여 있을 때 우려한 게 있습니다. 조중동에선 더 이상 건전한 비판 세력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죠. 조중동 관련 취재를 할 때 어느 기자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내부에도 건전한 비판 세력이 있는데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그런 세력은 없어진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84968_91531_5028

▲ 2008년 4월29일 방영한 PD수첩‘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MBC

그러나 저는 조중동에 기자로 입사하거나 PD수첩에 PD로 들어가는 인적 자원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업 준비생들은 언론사 시험을 여기 저기 보다 한 곳에 합격이 되면 들어가게 되는 상황입니다.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죠. 저는 ‘조중동 기자들이 PD수첩에 대한 그런 기사를 쓰며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조중동의 한 기자는 저에게 ‘몸은 조중동에 있지만, 마음은 PD수첩에 있다’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왜 조중동 기자들이 시키는대로 보도를 해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MBC PD수첩은 이런 보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제작진 개개의 자율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직문화를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저절로 커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PD연합회, 기자연합회, 노동조합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PD수첩의 이런 보도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KBS도 타언론사 취업자들처럼 똑같은 자질을 가진 대학생이 들어간 곳인데, 현 정권 출범 이후 KBS는 왜 빨리 무너졌을까요? 일례로 김미화와 김제동씨 하차 논란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MBC에 있던 김미화씨는 현재까지 진행을 맡고 있고, KBS 김제동씨는 하차했죠. 당시 김미화씨 하차 명령이 떨어졌을 때 PD들은 부당한 인사라며 PD 총회를 소집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MC를 왜 바꿔야 하냐’며 조직적인 PD들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KBS는 조직적인 저항이 없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강한 개인이 김미화를 지킨 것이 아니라, 강한 개인이 강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노조와 협회의 조직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조중동의 보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중동에 (개인의 자율성·독립성을 보장하는)이같은 조직이 있습니까.

79085_84037_385

▲ 작년 4월22일 2차 MBC 본사 압수수색을 위해 진입을 시도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수사관들과 조합원들이 몸으로 밀고 막으며 대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또 제가 그동안 느낀 것은 사실 현재 한국에는 겉으로 드러내서 학자의 원칙을 말하는 분이 얼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많이 당하니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조중동을 고려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PD수첩 방송 원본 제출로 압박을 받을 때, 원본 체출을 안 하고 체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어느 교수가 조중동에 ‘원본 제출은 언론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왜 모든 언론이 싸우지 않느냐’는 취지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사실 주위에선 ‘이 정도라도 쓴 게 어디냐’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서운했습니다. ‘체포 당하거나 압수수색 당하기 전에 진작 좀 써주시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픔이 있었습니다.

누가 조중동의 의제 왜곡과 싸웠을까요? 사실 그동안 힘들었지만 외롭지 않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오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이 저희한테 힘이 됐습니다. 그러나 조중동에 기고를 해서 비논리적으로 PD수첩을 비난한 교수들을 저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자들도 저렇게 글을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부당한 공격에 다른 소리를 내줘야 하는 언론학회에 대한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디어스에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조중동 관련해 정지민의 실체를 꿰뚫은 독특한 칼럼(2009년 9월 <MBC PD수첩 ‘양심선언’의 실체를 분석해 보면?> 등)을 썼는데 그 글을 읽고 이 교수의 혜안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32개월 동안 버티면서 힘이 된 두 사람은 바로 (‘PD수첩 사건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검찰에 사표를 낸) 임수빈 전 형사부장과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입니다. 특히 1심 판사의 경우 판결 이후 조중동이 판사에게 한 것은 명예훼손 정도가 아니라 테러였습니다. 조중동이 이 판사의 얼굴을 공개했고, 실제로 일부 사람들이 대법원장에게 테러를 가하고 일부 판사들의 집에 몰려가기도 했습니다.

92432_103092_1214

▲ 지난 2008년 8월18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1층에서 열린 ‘MBC 방송장악저지 및 PD수첩 사수’를 위한 MBC 노조 조합원 비상총회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제가 그동안 재판 과정을 생각하면 이런 저런 게 막 떠오릅니다. 그동안 저는 PD수첩을 5~6년 맡았는데, 정권과 상관없이 이 사회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보도를 했습니다.

일례로, 노무현 정권 시절 FTA 보도를 하며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기존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것을 몇 차례에 걸쳐서 다뤘습니다. 그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FTA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했을까요. 당시 <PD수첩> PD들에게 ‘토론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권은 ‘(소송)걸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언론 태도가 검찰에게 반영됐고, 결국 시키는대로 하는 검찰을 만든 것입니다. 제작진을 체포하고 한 검사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합니까. 시켜서 하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시키는 정권과 거기에 묵묵히 따르는 검사들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꼭 나가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정치적이고 너무도 부당한 탄압이지만 저희가 빌미를 주지 않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을 100% 완벽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을 합니다. 다른 후배들에게는 앞으로 잘하자고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대포폰 관련 얘기를 하나 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청와대 대포폰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정말로 100% 이해가 됐습니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저는 제 핸드폰으로 중요한 얘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얘기를 하지 말라. 지금부터 당신 핸드폰은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를 한 핵심 관계자로부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PD수첩이 대포폰을 쓸 수도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이것도 대한민국의 언론자유 현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