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없는 PD수첩·2580… 어쩌다 이 지경에

[2013년 시사프로그램 결산] 박근혜 정부 1년 정부 비판 실종, 언론인 자기검열·무기력 확산

민동기, 조윤호 기자  mediagom@mediatoday.co.kr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MB정부 5년을 거치는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미디어오늘이 박근혜 정부 초기, 시사프로그램 제작진들을 대상으로 취재했을 때 많은 PD들이 시사기능 복원과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2013년이 마무리 되어 가는 지금 이들은 여전히 시사프로그램 정상화를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일부 제작진은 “지상파 시사기능은 무력화 된 상태이며 이런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역사왜곡’ ‘사전심의’ 논란 끊이지 않았던 KBS=KBS는 올 한 해 지상파 가운데 가장 많은 부침을 겪었다. 지난 봄 개편에서 <KBS스페셜> <환경스페셜> <역사스페셜> <과학스페셜> 등 이른바 ‘4대 스페셜’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시사기능이 더욱 축소됐기 때문이다. KBS는 ‘4대 스페셜’을 통합한 <KBS파노라마>를 출범시키며 명품 다큐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내부 반응은 부정적이다.

기획제작국 한 PD는 “‘KBS파노라마’로 통합된 후 시사 아이템을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통합 전 ‘KBS스페셜’ 등을 통해 그나마 시사기능을 유지해왔던 것도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비판했다.

<추적60분>과 같은 정통 시사프로그램도 상황은 비슷하다. <추적60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심층 취재하는 등 나름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불방 논란을 빚는 등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추적60분>은 ‘한국일보 사태’ ‘KT 등 정부산하기관 비리 문제’ 등을 짚기도 했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나 채동욱 검찰총장 파문, 통합진보당 사태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다큐국 한 PD는 “올해 KBS 시사기능 위축에 KBS심의실이 큰 역할을 했다. 사실상 검열기구 노릇을 했다”면서 “프로그램에 간섭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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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일 KBS본관 1층 ‘시청자광장’에서 언론시민단체와 KBS PD들이 <추적 60분> 불방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역사왜곡’ 논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논란의 중심에는 <다큐극장>이 있다. 지난 봄 개편 때 신설된 KBS <다큐극장>은 유신찬양 논란에 휩싸이면서 역사왜곡 시비에 휘말렸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본부)는 “총 24편 중 13편이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직간접적으로 칭송하는 내용이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가을개편에 신설된 <역사저널 그날>은 주진오 교수(상명대)가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 등으로 방송이 연기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MBC SBS 정부비판 ‘침묵’ =정부 비판 아이템이 거의 없는 건 지상파 방송3사 공통 현상이다. 다만 KBS가 ‘역사왜곡’ ‘시사축소’ ‘사전심의’ 등을 통해 격렬한 내부 반발에 휩싸였다면 MBC와 SBS는 내부 반발이 거세지는 않았다. 다만 두 방송사 시사프로그램들은 부동산이나 각종 단체 비리 폭로, 서민들 삶의 ‘미시적 풍경’을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특징을 보였다.

미디어오늘이 2013년 1월1일부터 12월22일까지의 MBC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SBS <현장21> 아이템을 분석한 결과 물가와 빚, 통신요금 등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의 현실에 대해 다룬 아이템이 9건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갑을문제’라는 프레임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폭로한 아이템도 9건이었다.

특징적인 건 부동산 문제를 다룬 아이템이 11건으로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반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나 NLL 대화록 논란,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 통합진보당 사건 등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아이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NLL 대화록의 경우 <PD수첩>이 6월 30일 ‘NLL, 노무현, 국정원’이라는 주제로 한 꼭지 다룬 것이 전부였고, 국정원 사건은 <시사매거진2580>이 10월 27일 ‘국정원 트위터 핵폭풍’이라는 주제로 한 꼭지 보도한 것이 유일했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사교과서 파동도 SBS <현장21>이 한번 다룬 것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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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시위에 나선 <시사매거진 2580 >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MBC 시사교양국 한 PD는 “정부 비판 아이템을 하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채택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항의하다 점점 무기력해진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PD는 “정부 비판하는 아이템을 못하게 하니 ‘비정치적’ 아이템을 많이 다루는 것 같다”면서 “파업 때 대체인력으로 들어온 PD들이 ‘PD수첩’으로 많이 왔는데, 그 분들이 이런 아이템을 많이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 그 자체가 나쁘진 않지만 사회나 정부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MBC 한 중견기자는 “‘2580’에서 영남제분, 남양유업 밀어내기, 삼성전자서비스 등 의미 있는 보도를 했지만 아무래도 권력 감시나 사회감시 등에서는 소극적이었다”면서 “내부 갈등을 비롯해 여러 명의 기자가 부서를 옮기는 등 어려운 환경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방송사 ‘징계’·시사프로그램 전방위 압박=시사프로그램 침체와 위축의 근원에는 제작진에 대한 방송사 안팎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있다. 지난 1월 쌍용차 해고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3일>은 내용이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KBS심의실로부터 특정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구받았고,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의 경우 방통심의위로부터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받기도 했다.

MBC ‘2580’ 제작진은 지난 6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다룬 ‘국정원에 무슨 일이?’ 편을 방송하려 했으나 당시 심원택 시사제작 2부장의 요구로 해당 아이템이 빠진 채 방송됐다. ‘2580’ 기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지만 MBC로부터 징계조치를 당했다.

SBS <현장21>도 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 5월 당시 이웅모 SBS 보도본부장(현재 사장)은 <현장21> 폐지안을 사측에 제출했는데 8시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장21>을 담당하던 취재 기자들을 뉴스 제작에 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제작진은 이를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탄압으로 보고 강력 반발했다. 기자들의 반발로 <현장21>은 폐지 수순을 밟진 않았지만, 취재인력은 13명에서 8명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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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현장21>

SBS 한 중견기자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닌데, 확실히 민감한 주제는 피하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금 같은 경우 철도파업을 둘러싼 쟁점들을 시사프로그램이 다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 한 중견PD는 “MB정부 5년을 거치며 무력감에 시달렸던 시사프로 제작진들이 지난 1년 동안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노력은 했다”면서 “하지만 제작진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여전히 침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