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이사로서 MBC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야당 추천 방문진 이사 3인의 반성문… “경영진 전횡·노조파괴 시나리오 알고도 막지 못했다”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방문진 이사로서 MBC의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MBC는 올 한해 공정성, 공익성, 신뢰성, 다양성 등 정작 공영방송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뉴스와 시사 부문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못 끌고 신뢰의 위기를 부른 것은 치명적입니다. 제작부문에서처럼 보도·시사에서도 자율성이 보장됐다면 오늘의 처참한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속적 성장 앞에 영혼 없는 졸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9명의 이사 중 야당 추천 3인의 이사들이 최근 방문진 회의 파행과 MBC 경영진의 노조탄압, 방송 공정성 지표 추락 등에 대한 반성문을 내놨다.

유기철·이완기·최강욱 방문진 이사 3명은 24일 “방문진 ‘미완의 보고서’”라는 제목의 서한을 통해 “지난 8월 방문진 10기 이사진이 출범한 후 MBC의 관리감독이라는 존재 의의가 무색하리만큼 방문진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경영진의 전횡을 알면서도 9명의 이사 중 확고하게 정형화된 6명의 이사들 앞에서 무기력했고 역부족을 실감해야 했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이들은 “현시점에서 MBC의 최우선 과제는 공정성과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노사관계의 복원과 사내 화합을 통해 과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던 ‘좋은 친구 MBC’의 위상을 되찾는 일이라고 우리는 판단했다”면서 “그러나 경영진은 경영행태를 비판하는 구성원에게는 전보·징계 등 보복인사로 응답하고, 그로 인해 소송이 늘고 패소가 잦아지자 아예 직종을 폐지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도연 기자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도연 기자

 

이들은 최근 MBC 경영진이 노동조합과 임금협상 중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 종료를 통보하고 노조 상근 집행부에 업무복귀 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서도 “‘노조 파괴’의 시나리오는 현재도 진행형”이라며 “누구나 알고 있는 ‘저의’를 ‘기본과 원칙’으로 포장한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방송이 공정성을 외면하고 ‘정도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시청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MBC 경영진이 ‘경우와 상식’에 맞게 일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22일 최강욱 이사는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 방문진 회의 공개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에도 회의록 익명과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공영방송 이사들이 복면을 쓰고 회의록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방문진 이사로서 발언하는 것에 어떤 부끄러움과 두려움 있느냐”며 “영업비밀이 많아서, 광고수익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심지어 법에서 의무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까지 지난 9기부터 숱한 궤변과 비논리가 있었지만, 회의록에 발언한 이사의 이름을 적지 않기로 했다고 당당하게 설명할 논거는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방문진 야당 추천 이사들의 ‘미완의 보고서’ 전문이다.

반성합니다. 지난 8월 방송문화진흥회 10기 이사진이 출범할 때부터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역시나’로 귀결되는 형국입니다. MBC의 관리감독이라는 존재의의가 무색하리만큼 방문진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9명의 이사 중 확고하게 정형화된 6명의 이사들 앞에서 저희 셋은 무기력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방문진은 모든 것을 표결로 처리하며 토론과 대화는 표결을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반성합니다. 그렇다고 제 얼굴 비뚤어진 지 모르고 거울만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거울 앞에 선 심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지난 10월 고영주 이사장은 국정감사에 나가 분별없는 색깔론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저희 셋은 이사장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공영방송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부적격성을 지적하는 저희의 주장에 6명의 이사들은 ‘개인’ 발언을 사상검증 하느냐며 엄호했습니다. 방문진 이사장으로 국정감사에 참석한 것은 공인의 자격이라고 반론을 폈지만 6명의 이사들 중 단 한 명도 이해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6명 만장일치로 불신임안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여러 건의 송사에 휘말린 이사장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야말로 하나마나 한 약속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사장의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물러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그때쯤에는 이사장의 임기도 종료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현시점에서 MBC의 최우선 과제는 공정성과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노사관계의 복원과 사내 화합을 통해 과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던 ‘좋은 친구 MBC’의 위상을 되찾는 일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합니다. 신입사원 채용을 3년째 중단한 경영진은 그 자리를 모두 경력직으로 채웠습니다. 신입사원 없는 경력직만의 채용으로 조직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서로 간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경영행태를 비판하는 구성원에게는 전보, 징계 등 보복인사로 응답하고, 그로 인해 소송이 늘고 패소가 잦아지자 경영진은 아예 직종을 폐지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타임오프제의 기간 만료를 내세워 노조 전임자들에 대한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경영진의 전횡을 알면서도 역부족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6명의 이사들이 경영진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방문진은 속기록을 작성하지만 보관하지 않습니다. 회의록은 요약해 보관하지만 무기명으로 정리합니다. 12월 3일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항입니다. 그래서 회의록에는 ‘모 이사’ ‘한 이사’ 등으로 명시되는데 이 때문에 방문진 이사들은 모씨 아니면 한씨로 오인되기도 합니다. 지난 22일 재논의가 있었지만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회의록 실명제에 반대하는 이사들은 ‘속기록 공개 시 사이비 언론에 이용당하고 그로 인해 이사회 활동이 위축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부작용 무서워서 투명한 민주주의 안 할 거냐’, ‘KBS, EBS 다 하는데 못하는 이유가 뭐냐’, ‘정작 언론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도 속기록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결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성씨와 이름을 숨기고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합니다.

방문진 이사로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MBC는 올 한해 시청률과 수익성이라는 외형적 비교우위를 달성했습니다. 유리하게 전개된 수익모델의 다변화와 제작부문의 자율성이 보장된 결과라는 것이 방송계의 정설입니다. 그러나 공정성, 공익성, 신뢰성, 다양성 등 정작 공영방송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뉴스와 시사 부문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못 끌고 신뢰의 위기를 부른 것은 치명적입니다. 제작부문에서처럼 보도·시사에서도 자율성이 보장됐다면 오늘의 처참한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속적 성장 앞에 영혼 없는 졸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희 셋은 MBC의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MBC 현 경영진은 지금의 체제와 자리 유지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아무리 유능해도 쓴소리 하는 사원들은 내쳤습니다. 베테랑 기자와 PD들은 소중한 일터에서 밀려났습니다. ‘노조 파괴’의 시나리오는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저의’를 ‘기본과 원칙’으로 포장한다고 가려지지 않습니다. 기본과 원칙도 지켜져야 하지만 ‘경우와 상식’이 세상을 사는 도리이자 이치일 것입니다. 방송이 공정성을 외면하고 ‘정도경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시청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2016년 MBC경영진은 ‘경우와 상식’에 맞게 일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보직간부들도 자리의 막중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도 때론 뒤돌아보고 MBC의 원상 복원력을 유지하는 길이 무엇인지 성찰하는데 마음의 문을 열어 봅시다. 새해에는 “우리부터 좋은 친구”가 되고 시청자들로부터도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MBC식구들의 열정과 노고에 응원을 보냅니다. 방문진의 한 축을 맡은 저희도 미완의 과제 앞에 머리를 싸매고 새해를 맞겠습니다.

2015년 세모

방문진 이사  유기철, 이완기, 최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