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해 11월 상암동 신사옥 앞에서 경영진의 교양제작국 해체와 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MBC 기자·PD 직종 폐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8개 직능협회 “파업 후 직종 변경, 인사 불이익 수단 돼”… 권성민 PD 부당전보 판결 근거 되기도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MBC 사측이 지난 8일 사내 이사회를 열고 기자·PD·아나운서 등 직종을 폐지하는 인사규정을 개정함에 따라 MBC 구성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MBC 내 각 직능협회는 12일 연합성명을 내고 “회사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직종 폐지는 MBC 직원들의 중요한 근로조건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노보를 통해 “사측은 지난 6일 오후 노조 측에 조직개편과 사규개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직종 폐지 방침에 따라 인사규정 가운데 직종의 정의를 삭제하기로 했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김태호 PD도 영업직으로? MBC, 직종 구분 없앤다)

본래 MBC 인사규정 직종분류표에는 직원을 직무 특성에 따라 △기자 △카메라 기자 △편성 PD △TV PD △라디오 PD △아나운서 △미술 △제작카메라 △방송기술 △방송경영 △시설 △IT·콘텐츠관리 △기타 등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측이 사규 개정을 강행함에 따라 이 같은 직종분류가 모두 삭제됐고, 대신 국장과 부국장, 부장 외에 나머지는 전문 직종 구분 없이 △일반직 사원 △촉탁직 사원 △연봉직 사원 △업무직 사원으로만 나뉘게 됐다.

송병희 MBC 경영지원국장은 8일 직종 삭제 등 사규개정 관련 입장자료를 내어 “그동안 인사정책 및 인사효율을 위해 운용해 오던 인사규정상의 ‘직종의 정의와 분류’는 이미 사문화돼 사규상에 존치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라며 “기자, PD, 아나운서의 직무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며 기자는 기자의 역할을, PD는 PD의 역할을,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의 역할로 각자 전문 영역에 충실하고 매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 국장은 사측의 직종 폐지 방침이 향후 ‘쉬운’ 부당전보를 위한 사전조치라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선 “인사규정상의 직종분류는 ‘인사정책상 편의적인 것으로 직종 여부가 전보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원 결정에 비춰 볼 때 전혀 타당하지 않다”며 “지금은 채용 시 특정 직무로 채용하더라도, 회사의 인사수요가 있을 경우 다른 직무로 전환해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기본 인사방침”이라고 반박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해 11월 상암동 신사옥 앞에서 경영진의 교양제작국 해체와 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해 11월 상암동 신사옥 앞에서 경영진의 교양제작국 해체와 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대해 12일 MBC 내 8개 직능협회(기자협회·미술인협회·방송경영인협회·방송기술인협회·아나운서협회·영상기자회·카메라맨협회·PD협회)는 연합성명을 내고 “MBC에서 직종 변경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수많은 갈등을 빚으며 소송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직종 폐지를 단순히 ‘사문화된 조항의 삭제’라고 볼 수는 없다”며 “회사의 갑작스러운 직종 폐지는 그동안 되풀이해온 ‘부당 전보’를 더욱 손쉽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미리 규정을 손질해 놓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회사는 여러 차례 인사 발령을 통해 본인의 희망과 무관하게, 아니 희망과는 반대로 직원들의 직종을 바꿔버렸다”며 “상당수의 유능하고 전문성을 갖춘 기자와 카메라기자·PD·아나운서·미술·카메라·기술·경영 등 전 부문의 직원들은 이 같은 인사로 기존 업무에서 배제돼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해야 했고, 카메라기자의 경우에는 아예 직종 부서가 폐지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인사 조치를 당한 직원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법에 호소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10년, 20년씩 특정 직종의 업무에서 경력을 쌓아온 직원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직종으로 바꾸는 인사 조치가 진정 회사가 강조하는 ‘경쟁력’을 높이는 인사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아울러 사측은 법원 판례로 봐도 직종 규정 삭제와 부당전보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면서 MBC 직원의 전보발령 관련 사측이 승소한 판례만을 예로 들었지만, 가장 최근 권성민 예능PD에 대한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에서 법원은 전보발령의 업무상 필요성을 판단하면서 MBC 인사규정상 직종 구분을 근거로 삼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권 PD가 근로계약 당시 근로 내용을 PD 업무로 특별히 한정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인사규정에서 권 PD의 직종을 분류하고 있다”며 “권 PD는 예능 PD로 입사해 정직처분 시까지 예능국에서 근무해 왔고, 그 이후로도 예능국 또는 유사한 직종에서 계속 근무하게 되리라는 상당한 기대가 있었을 것인 점 등 전보발령으로 인한 원고의 생활상 불이익은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관련기사 : “만화 그렸다고 해고…지금이 전두환 시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