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월6일 35면 사설.

쏟아지는 현대차 보도는 ‘공짜 해외 취재’의 답례?

“마지막 담금질” 비슷비슷한 기사로 도배…“관람객 몰려 차가 닳을 지경” 호들갑도

차현아·강성원 기자 | chacha@mediatoday.co.kr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작품인 ‘EQ900’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건물에서 잠시 사라지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너무 많은 본사 직원들이 EQ900을 보겠다고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차량과 전시 공간이 일부 훼손되는 소동이 벌어진 탓이다.”

연합뉴스가 지난 11일 보도한 “현대차 진열했던 제네시스 EQ900 급하게 치운 이유는”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제네시스의 신차인 EQ900을 만져보려고 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을 보도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별도 브랜드로 독립시키고 신차 모델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어뷰징 기사와 홍보성 기사를 지나치게 쏟아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에게 현대자동차는 최대 광고주라는 점도 의구심을 사게 한다.

다수의 언론들이 현대자동차 고급차 브랜드의 신차 모델의 출시 전 ‘마지막 담금질’ 모습을 해외 주행 시험장 현장 기사로 다뤘다. 내용은 비슷했다. 현대자동차의 신차 모델인 EQ900이 출시 전 난코스로 구성된 주행 시험장의 신차 테스트를 통해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같다. 다만 ‘마지막 담금질’의 장소가 어떤 언론의 경우 미국 모하비사막 시험장이라고 전한 반면, 또 다른 일부 언론들은 독일 뉘르부르크 링 이라고 전했다.

신차 테스트 현장 일제히 ‘마지막 담금질’ 보도

KBS는 11월16일 “‘녹색 지옥을 넘어라’…車 메이커들의 성능 전쟁”이라는 보도에서 “극한의 주행코스로 이름 높은 독일의 ‘뉘르부르크 링’은 세계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이 신차를 내놓기 전 주행성능을 시험하는 곳”이라며 “우리 자동차도 모터스포츠의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다음 달 출시되는 제네시스 EQ900도 이 곳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BS역시 11월15일 보도된 “모든 신차들이 거친 지옥…제네시스 ‘극한 담금질’”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독일 뉘르페르크 링 현장 취재를 했다. 해당 리포트에서는 “국내 최고급 차종도 출시를 앞두고 이곳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고 비슷한 내용으로 보도했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모델인 EQ900”이 “매일 30바퀴 이상 달리며 극한의 조건에서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제네시스는 지옥의 코스에서 본격적인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BC의 보도도 다르지 않다. 11월27일 “현대차, ‘제네시스’ 이름 달고 벤츠·BMW와 정면 대결”이라는 리포트에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드넓게 펼쳐진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주행 시험을 하고 있는 제네시스 브랜드 신차의 모습이 보도됐다. 해당 보도에서는 “‘현대’라는 이름까지 빼고, 고급차 시장 공략에 나선 현대차의 승부수가 미국 시장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리포트는 TV조선에서도 볼 수 있었다. TV조선의 “제네시스 유럽서 혹독한 담금질, 현장을 가다”리포트역시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돌고 있는 EQ900의 모습이 집중 조명됐다. 내용은 다른 지상파 언론 보도처럼 혹독한 담금질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11월24일 “[르포] 제네시스 EQ900 탄생의 요람 ’모하비시험장‘을 가다”기사를 통해 미국 모하비사막 시험장에서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패를 가를 최상급 세단”인 EQ900의 마지막 담금질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의 비슷하게 언론들이 쏟아냈던 제네시스 신차의 ‘마지막 담금질’ 취재를 위해 일부 언론들은 현대자동차에서 전액 지원하는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기자는 “이번 출장의 비용은 현대자동차에서 모두 지원했다”고 전했다.

▲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일부 종편들도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신차 관련 사안을 연이어 보도했다.

▲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일부 종편들도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신차 관련 사안을 연이어 보도했다.

 

현대차 고급차 브랜드 소개 기사 연이어 내보내

이번 현대차 신차 출시에 앞서서도 최근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내용의 보도가 집중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KBS의 11월4일 뉴스9 ‘[앵커&리포트]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성공 요건은?‘이라는 보도에서는 “48년간 현대라는 단일 브랜드에서 벗어나 ’제네시스‘를 통해 고급차 시장에 도전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또한 제네시스가 다음달에 초대형 세단인 G90, 국내에서는 EQ900이라는 이름으로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라는 점도 소개했다. 이어 현대차 디자인 총괄사장의 입을 빌어 “제네시스 브랜드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비율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SBS역시 11월5일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로 고급차 시장 공략’” 뉴스 리포트를 통해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의 출범을 공식선언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어 “현대자동차가 아닌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라는 별도의 로고를 단 신형차들로 독일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SBS는 11월4일에도 “두 날개로 편 ‘제네시스’…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이미 제네시스에 대해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다. 12월9일 신차 모델이 출시되자 SBS는 “베일 벗은 제네시스 ‘EQ900’…‘명차와 겨룬다’”라는 리포트를 통해 한번 더 제네시스와 신차를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기사뿐만아니라 사설을 통해서도 현대차의 고급차 시장 진출이 한국 제조업의 가야 할 길이라는 의미를 끌어내기도 했다. 11월6일 “현대車 고급차 시장 진출, 이게 한국 제조업이 가야 할길”이라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현대차는 1990년대 말 미국 시장에서 ‘10년간 10만마일 무상 보증’이라는 파격 카드로 싸구려 이미지를 극복한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며 “현대차의 총력전 덕분에 단숨에 품질의 벽을 돌파했고 세계 5위의 글로벌 메이커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또한 “제네시스(genesis) 라는 말 그대로 기업 스스로 신기원(新紀元)을 열어야 기업도 살고 국가 경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해설했다.

▲ 조선일보 11월6일 35면 사설.

▲ 조선일보 11월6일 35면 사설.

 

현대자동차의 신차 브랜드 소개를 위해 일부 언론은 어뷰징도 감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일보는 신차 출시 다음날인 지난10일에만 제네시스 EQ900이 제목에 들어가는 기사를 10개 쏟아냈다. 모두 내용은 같고 제목만 조금씩 변형을 준 기사들로 기자 바이라인은 들어가지 않은 온라인용 기사다. 같은 기사에 제목만 바꾼 어뷰징 기사로 제네시스 EQ900을 홍보하는 기사는 동아일보 역시 9일에만 11개를 쏟아냈다.

“하도 만져대서 EQ900 전시차가 닳을 정도”

현대차의 제네시스 관련 보도는 신차나 브랜드를 단순 홍보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건물에 진열했던 신차가 많은 사람들이 만져보려 몰려드는 바람에 잠시 치웠다는 해프닝 기사조차 언론들은 줄지어 보도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며 신차를 만지면서 광택이 없어져 다시 광택을 내려고 차를 잠시 이동시켰던 것을 두고 갑자기 EQ900이 사라졌다며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는 내용의 해프닝 기사다.

연합뉴스는 지난11일 “EQ900이 나타나자 오전부터 EQ900 주변에는 구경하려는 직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엔진 뚜껑을 열어보고 운전석에 타고 와이퍼를 만져보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직원들도 많았다. 주변 일대가 발 디딜틈 없이 꽉차면서 급기야 EQ900 전시장 주변의 전등이 깨지는 사고까지 발생해 보안 요원이 출동할 정도”라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이어 제네시스 관계자의 말을 빌려 “수많은 신차를 출시했지만 이렇게 직원들의 관심이 많았던 건 처음”이라면서 “하도 만져 대서 EQ900 전시차가 닳을 정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연합뉴스는 “현대차그룹 직원들이 EQ900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존의 대중차 이미지로 대변되던 현대기아차를 고급브랜드로 한 단계 도약시켜줄 모델이기 때문”이라며 신차에 대한 칭찬을 덧붙였다. 이 같은 내용의 보도는 SBS를 비롯해 전자신문, 조선비즈, 충청일보 등 다수의 언론들이 연합뉴스 출처의 기사로 재생산됐다.

현대자동차의 이번 신규 브랜드와 신차 모델 출시가 많은 언론들이 입을 모으듯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는 혁신이고 한국 제조업의 한 모델일수도 있다. 제네시스 신차 모델을 보기위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도 사실이므로 보도가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일간지 기자는 “보도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더라도 기자 본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취재를 했고 기사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자동차가 최대 광고주이기 때문에 지면에 영향을 미쳐서 이렇게 썼다는 개연성을 끌어내기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현대차에서 ‘미디어투어’를 명목으로 기자들에게 빈번히 해외 출장을 지원하는 것은 기자 윤리만의 문제가 아닌, 보도 공정성 악화와 언론의 기업 종속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SBS 기자는 “이렇게까지 보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의 의견도 있다”며 “특히 해당 보도를 위해 현대자동차 측의 출장비 지원을 받았다면 보도의 윤리성 차원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MBC의 경우 최근에도 보도국 해외출장 상당수가 회사 윤리강령에 어긋나는 ‘스폰서 출장’을 가고 있다는 노동조합 차원의 지적이 제기된 후에도 김장겸 보도본부장이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 된다”는 발언을 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MBC 윤리강령 전문에 따르면 프로그램 취재와 제작과 연수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은 원칙적으로 회사 경비로 충당해야 한다. 다만 회사가 인정하는 경우엔 예외로 하고 있지만, 윤리강령 시행기준 14조(외부단체 및 기관의 금품지원 수수 금지)엔 △공적인 방송 유관단체로부터 공익성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제공되는 지원 비용 △시민단체 등 공익 목적을 위한 단체나 기관이 공익적인 행사를 위해 지원하는 비용 △방송위원회가 정한 방송협찬고지 규정을 준수하는 제작비 협찬 △해당 프로그램의 소속 본부장이 인정하는 기타 기관의 제작비 지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KBS 역시 윤리강령을 통해 “회사의 공식 절차를 거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무관련자와 외부기관 및 단체의 비용으로 출장·여행·연수를 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KBS 관계자는 1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회사의 공식 절차’에 대해 “보도 책임자 승인을 거쳐야 한다”며 “강령에 명시된 대로 공식 절차를 거치면 공적 기관이나 단체에서 지원하는 출장만 한정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측은 “50여명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미국·독일 등지의 해외 신차 성능시험장 현장 취재를 전액 지원했다”고 전했다. 이어 “EQ900이 미국과 독일 주행시험장 같은 험난한 코스에서 테스트한 후 탄생한 차라는 것을 체험을 시켜주기 위해 기자들을 데리고 갔던 것이다. 출입기자들은 기자로서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신차를 직접 타보고 느낀 것을 쓴 것이지 현대자동차에서 출장비를 지원한 것때문에 그런 기사를 썼다고는 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뿐만아니라 해외 자동차회사들도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번 역시 일각에서 우려하는 외유성 출장이 아니라 신차 시승행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