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 유의선 이사께 보내는 공개 편지

[이완기 칼럼] 방문진의 파행과 일부 이사들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 media@mediatoday.co.kr

(편집자 주.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일에는 MBC 경영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외부 평가단이 여당추천 인사들의 추천으로 구성돼 야당추천 이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MBC 안광한 사장 출석 요구 건과 이사회 속기록 보존 및 회의록 실명제 등의 요구도 6 대 3의 의결 구조에서 여당추천 이사 전원의 반대로 부결됐습니다. 야당추천 이사 가운데 한 명인 이완기 이사가 미디어오늘에 공개 편지 형식으로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다소 분량이 길지만 방문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전문을 게재합니다. 미디어오늘은 반론 또는 의견을 담은 기고를 환영합니다.)

을미년 연말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리가 만난 지 5개월이 다 되어가고 해수로는 2년째 입니다. 지난해 8월 방문진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잘 해보자며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기도 했었지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요 언론학자인 유 이사는 정파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임을 유난히 강조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솔직히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좋은 인연이 되리라고 생각했고 나름 기대도 컸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공개적인 서신을 올리게 된 것은 지금의 방문진과 MBC의 상황이 그때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입니다. 또한 ‘경영평가단 구성’ 논란과 관련해서 며칠 전 미디어워치에 게재된 유 이사의 편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편의를 위해 존칭은 생략하니 양해바랍니다.

아무래도 이 문제를 설명하려면 지난해 12월3일과 12월22일의 이사회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전에도 ‘이사장 선임’, ‘이사장 불신임 결의안’, ‘MBC 소송비용’, ‘경영지침’ 등 이사회에서 안건을 논의할 때마다 개인 역량의 한계를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과 12월22일에 있었던 두 차례의 이사회는 방문진에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갖게 할 정도로 절망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언론이 방문진 이사 앞에 ‘여당추천’, ‘야당추천’ 따위의 접두사를 붙여 표기하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습니다. 방문진 이사는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 추천을 받아 선임된 것이지 특정 정당의 대리인이 아니며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방문진의 논의과정이 언론이 구분한 대로 정확히 갈리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표기법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방문진을 설명하는데 가장 편리한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진영의 논리는 옳고 그름, 참과 거짓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런 논거 없이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까요.

방문진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느꼈던 점은 과정이야 어떻든 결말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내 착각이라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그동안의 논의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문진의 이사장은 고영주 이사로 정해진 분위기였고, 국정감사에서 고 이사장이 어떤 문제의 발언을 해도 ‘불신임 결의안’은 부결되는 수순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에 있었던 MBC 경영진의 첫 업무보고는 형식적인 보고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권추천 이사들이 경영진에게 질문을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여권추천 이사들은 “경영진에 질타하지 말라”고 하고, 문제점이 있어 따지면 “따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조금 길어지면 “시간이 없다”면서 질의를 중단시킵니다. “그런 문제를 왜 이 자리에서 언급하느냐”, “그 문제는 우리끼리(방문진에서) 논의하고 결정한 뒤에 하자”는 등 야권추천 이사들은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고 묵살되었습니다. 방문진이 과연 MBC의 공적 책임과 경영의 관리감독을 위한 기구인지 회의를 느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교수이고 학자이며 상식을 강조했던 유의선 이사 또한 그러한 방문진의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언한 것을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안건은 여권 추천 이사들의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방문진 밖에서 방문진에 호위무사라는 별칭을 붙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MBC는 2012년 파업 중단이후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노사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이는 경영에 큰 장애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MBC 미래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MBC 노사 간 소송만 40여건이 넘었고 그 대부분은 회사가 패소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언젠가 야권추천 이사들은 보고를 하러 온 백모 MBC 본부장에 소송비용이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나는 MBC가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의 요청은 거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습니다. 백 본부장은 똑같은 논리로 야권추천 이사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내가 고영주 이사장의 생각을 묻자 “알고 싶지 않다”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공방이 오간 뒤 여권추천 이사들은 논리가 궁색해지자 방문진에서 따로 논의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논의도 없습니다. 이것이 늘 해왔던 방식입니다. 이것이 MBC경영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대주주 방문진의 현실입니다. 그때 유의선 이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12월3일 이사회에서는 ‘안광한 MBC사장의 방문진 출석’과 ‘속기록 보존 및 회의록 실명제’ 안건이 이사회에 부의되었습니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이 두 가지 안건 모두 큰 논란 없이 방문진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방송의 공정성이나 노사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도 아니며 정파적 문제는 더더욱 아닌 MBC 경영과 방문진의 열린 논의를 위해 필요한 당위적 사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학자인 유의선 이사는 방문진의 기본 역할과 관련해 동의해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착각이었습니다.

‘사장 출석 건’은 10월15일에 요청한 것으로 한 달 보름이 넘게 묵혀있었던 안건입니다. 안건에는 ‘본사 직종폐지의 건’, ‘기구개편 1년 평가’, ‘경쟁력 평가지수의 건’ 등의 경영 현안들에 대해 사장의 의견을 듣고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취지가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현안들은 한번쯤 방문진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안들입니다. ‘직종폐지’는 사내 구성원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고 노조의 소송까지 제기된 사안입니다. 이에 대해 방문진은 회사 결정이 끝난 뒤 보고만 한 차례 들었을 뿐입니다. ‘기구개편’ 또한 시행 1년이 되었으므로 이를 평가하고 문제점을 점검하는 방문진의 기본 역할입니다. ‘경쟁력 평가’ 부분은 보도․시사 분야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지수가 최하위를 맴돌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장의 의견을 묻고 대책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 날짜를 정해놓지도 않았고 적정한 시간을 잡아 사장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권추천 이사들은 전원이 반대했습니다. 반대의 논리가 무엇이냐는 야권추천 이사들의 항변에 여권추천 이사들은 그냥 표결로 응답했습니다.

‘회의록 작성’ 관련 안건도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KBS와 EBS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들은 모두 속기록을 유지․보존합니다. 그런데 MBC의 방문진은 속기록을 폐기합니다. 회의록에는 발언자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니 누가 무슨 발언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공영방송에서처럼 속기록을 보존하고 회의록에 발언자 이름을 명기하자는 것이었지만 여권추천 이사들은 이 또한 전원이 반대했습니다. 여권추천 이사들은 ‘속기록 보존’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의록 이름 명기’는 왜곡보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유의선 이사 역시 속기록 보존과 회의록 실명 작성을 모두 반대했습니다.

대부분의 회의체는 최종적 의사결정을 표결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토론 없는 표결, 부실한 토론은 다수의 횡포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의결은 만장일치 또는 특별다수제 등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소수를 존중한다는 취지이겠지요.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은 다수로 결정할 수 없으며 진솔한 토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이며 학자이신 유의선 이사는 무엇이 옳고 그릇된 판단인지 알 수 있는 분이며 스스로 진영논리에 빠져 있지 않다고 자부한다면 현재 방문진의 의사결정 방식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유의선 이사는 속기록 문제와 관련해 “나도 속기록은 보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 자리에서는 속기록 보존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로 ‘이익형량’이라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6개월 정도 이대로 시행해 보고 이익형량을 따져본 뒤에 속기록 보존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나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속기록 문제가 9기 이사회에서부터 수년 동안 논란이 되었고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 사안을 또 6개월을 기다리면서 이익형량을 따질 문제인가요. 속기록의 필요성은 바로 12월22일 이사회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바로 전의 이사회(12월3일)에서 나왔던 명예훼손 시비가 계속되었고 속기록을 확인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속기록 보존과 관련해 유 이사는 MBC는 법적 의무사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속기록을 유지하는 것은 법에 ‘저항’하는 것이라는 논리까지 폈습니다.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것을 행하면 법에 저항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법해석이며 궤변입니다.

유의선 이사는 회의록에 이름을 명기하면 사이비 언론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방문진 이사는 공인이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언론 피해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주장에 누가 동의할까요. 언론피해가 우려되어 자신의 이름을 걸지 못한다면 방문진 이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날도 고영주 이사장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야권추천 이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표결을 진행했습니다. 고 이사장의 회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고성이 오갔습니다.

저를 포함해 12월3일은 야권추천 이사들에게 방문진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며 과연 방문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를 갖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여러 안건에 대한 표결이 있었지만 이날처럼 절망적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표결은 항상 여권추천 이사들의 만장일치로 종료되었듯 이날도 그랬습니다. 유의선 이사의 입장 또한 한결같았습니다. 나는 앞에 놓여있던 자료집으로 테이블을 치고 회의실을 나왔습니다. 그날 이사회는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로 끝났습니다. 교수이자 학자의 신분을 평소에 강조했던 유 이사였기에 나는 더욱 절망했고 내 감정이 더 격앙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 내 분노의 표현이 과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곧이어 경영평가소위가 있다는 유 이사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회의 연기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 이사는 그래도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날 경영평가소위 의제는 평가단 구성이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면 안 되는 매우 이성적인 논의가 필요한 의제였습니다.

경영평가단과 관련해 유의선 이사가 미디어워치라는 매체에 썼던 장문의 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디어워치는 내가 잘 모르는 매체고 그 매체의 기사를 본 기억도 없습니다. 다만 2015년 마지막 날 밤에 한 지인이 나와 관련된 기사가 그 매체에 실렸다면서 그 내용을 메시지로 보내주어 보게 되었습니다.

편지 모두에 “언론 보도는 사실에 기초하여 작성되어야 한다”는 유 이사의 언급이 있더군요. 백번 옳은 말씀이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유 이사의 편지를 실은 미디어워치가 사실에 충실한 매체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적어도 이 사안과 관련된 내용에서 말입니다. 이에 대해 시시콜콜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평가단 구성과 관련한 ‘시간’의 문제입니다. 유 이사는 평가단 섭외, 후보자 동의, 후보자격 배척사항 등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고 했고 연말이라는 시기적 어려움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거는 12월3일 그렇게 서둘러 평가단을 결정해야 할 아무런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번 평가단의 경우 섭외는 하루 만에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후보자격 배척사항은 평가단 구성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12월3일 평가단 구성의 본격적 논의가 시작되었으므로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유 이사의 해외출장 기간을 상쇄한다 해도 무려 열흘 넘게 시간이 남습니다. 나는 12월3일 휴게실에서 회의연기를 요청하면서 바로 다음 날(12월4일) 회의일정을 잡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아니더라도 평가단 구성의 중요성을 안다면 이사 3명이 일정을 맞추는데 무슨 큰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실제 평가단 구성 논의는 30분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은 결정입니다.

유 이사는 ‘간사 부재’와 관련해 간사의 의결권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간사는 경영평가소위라는 회의체의 구성원입니다. 회의체 의장도 의결권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사는 의결권은 없지만 성원을 확인하고 필요한 자료를 챙기고 기록을 확인하는 등 회의 진행을 위해 중요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엄연한 회의체 구성원입니다. 그런 점에서 ‘간사 부재’는 소위운영의 심각한 결격사유입니다.

‘간사 부재’의 문제는 12월22일 이사회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내가 평가단 구성과 관련해 “사무처장(간사)도 없었다”고 했더니 유 이사는 내게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사무처장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아냐”면서 “사무처장이 참석했다”고 우겼습니다. 유 이사는 편지에서도 같은 내용을 주장하면서 내 심리상태까지 언급하셨더군요.

‘간사 부재’는 간사 본인으로부터 내가 전화로 직접 확인한 것입니다. 당시 간사는 “다른 소위에 참석했다가 왔더니 결정이 다 되어버렸고 회의는 끝난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다른 소위가 끝난 시간과 경영평가소위가 끝난 시간을 점검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교수라는 사람이 거짓말까지 하느냐”고 내가 다그치니까 유 이사는 회의 마지막에 들어왔다고 둘러댔습니다. “결정이 다 끝난 상태에서 들어 온 것을 회의참석으로 보느냐”고 하면서 내가 언성을 높인 것을 유 이사도 기억할 것입니다. 유 이사 스스로도 편지에서 “간사가 결정사항을 인지하였다”고 쓰셨더군요. 결정이 이미 끝났으니 그렇게 쓸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고영주 이사장이 나서서 두 분이 나중에 이야기하라고 제지했습니다. 나는 12월22일 이사회가 있기 전인 12월18일에 고영주 이사장을 직접 찾아가 경영평가단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이사장의 역할을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고 이사장은 소위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며 결국 유 이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나에게는 결과에 대한 아무런 답도 없었습니다.

12월3일 정기 이사회는 오후 5시30분이 넘어서 끝났고, 이사회 회의실에서 경영평가소위가 있다는 고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회의연기를 요청했습니다. 회의개최와 관련한 공방은 휴게실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유 이사가 수차례 회의 참석을 요청한 것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수차례 회의연기를 요청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는 나왔습니다. 그리고 귀가하는 도중에 실무자로부터 회의결과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시각이 오후 6시 15분이었으니 그 이전에 이미 상황은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12월3일 선정된 12명의 명단(모두 5명인데 섭외 대상으로 12명을 선정)에는 내가 추천한 분들이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12명을 선정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내가 추천한 7명의 인사를 포함해 사무처가 작성한 후보군만 46명입니다. 그러나 평가단 구성에 소요된 시간은 어림잡아 30분이 넘지 않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유의선 이사는 ‘본인의 방식’대로만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러면 ‘두 이사의 방식’대로 한 것입니까. 시민사회는 12월24일 결정된 최종 명단들 중에서 특정 인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뭐라고 답할 것인가요.

유 이사는 편지에서 내가 간사의 의결권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며 허위주장을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는 속기록을 검토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디어워치는 내가 12월3일 단지 ‘기분이 나빠서’ 회의에 불참했다고 썼고 그런 내용을 헤드라인으로 달았습니다. 물론 내가 기자와 통화할 때 ‘기분이 나빠서’라고 말했을 리는 없습니다. 나는 “험악한 분위기로 이사회가 끝났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회의를 지속하면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말을 축약하면 ‘기분이 나빠서’라고 표현할 수 있고 또 유사한 표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입장에 서 있는 기자로서 내 말을 그런 분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봅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썼지만 그것이 거짓이고 왜곡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한편 유 이사의 편지에서는 미디어스 보도와 관련해 많은 지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디어스 보도가 편지에서 지적될 만큼 그렇게 왜곡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 또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유 이사가 너무 감정을 앞세워 지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진리와 정의를 가르쳐야 할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결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결벽증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가끔 그런 때가 있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미디어스가 “공식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던 유 이사의 발언을 인용한 것에 대해 유 이사는 주장에 대한 배경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는데, 미디어스는 “내용도 완벽하게 제 식대로 한 것도 아니다”, “24년간의 교수 생활” 등 다양한 유 이사의 발언과 주장을 언급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봅니다. 물론 유 이사 입장에서는 편지에서 기술한 내용을 모두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유 이사 개인의 지나친 기대이며 매체에 대한 심한 간섭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매체는 나름의 편집노선이 있고 판단하는 기준이 유 이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계적 균형은 필요한 것이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양적 균형을 맞춰 똑같이 다룬다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으며 그것을 우리는 양시양비론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는 저널리즘을 전공한 유 이사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가 편지를 보낸 미디어워치의 편집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또한 유 이사는 미디어스가 “유 이사가 ‘이완기 이사가 기술전문가이니, 기술분야 추천을 부탁할 테니 남아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기술한 것과 관련해 교묘한 왜곡보도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12월3일 유의선 이사가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는 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11월 19일 경영평가소위 1차 회의에서 김광동 이사가 나에게 “기술전문가이니 ‘기술분야’ 추천을 맡아달라”는 언급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방송II 분야는 내가 추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유 이사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 전에 있었던 경영지침소위 논의과정에서 방송II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12월22일 이사회에서 유 이사는 분명하게 내게 ‘기술전문가’라면서 그래서 해당 분야는 내가 추천하는 인사로 할 것임을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나는 방문진 이사이지 기술전문가가 아니다”고 했고, 유 이사는 “그래도 각자 전문분야가 있다”면서 “나는 미디어법 전문가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러면 소위의 이사는 3명인데 5명의 평가단 중에 경영이나 회계는 누가 정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 이사는 미디어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사회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소위를 보이콧했음을 무의식적으로 밝혔다고 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회의 보이콧’이 아니고 ‘회의 연기’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날짜를 정하면 다음날이라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편지에서 저에 대해 ‘아픈 환자’ 운운한 것은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

12월3일 메시지로 평가단 구성 결과를 접수한 후 유 이사에게 전화했지만 유 이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잠시 후 “전화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귀가해 답신전화를 기다렸지만 11시가 가까워 오도록 전화가 없어 두 이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일방적 결정에 대한 유감표명과 함께 “평가단 구성은 평가소위의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인 만큼 과반수 논리로 설명할 문제는 아니며 이 달 중에 결정하면 되므로 여유가 있으니 재고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1시가 넘어 유 이사의 문자 답신이 왔습니다. 내용은 “개인적 감정을 못 이기고 자리를 떠나버려 의견을 못 들어 아쉽지만 절차상 흠결이 있지 않는 한 공식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계획된 일정이니 회의를 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결정을 오늘 꼭 해야 할 사항은 아니며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재논의를 거듭 요청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다시 보냈지만 이후 답신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12월22일 이사회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나는 정상적인 논의체계가 아니므로 재논의하자고 유 이사에게 재차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김광동 이사는 벌써 가버리고 없었지요. 유 이사는 그날 이사회에서 언급한 과반수 참석과 교수회의 사례를 반복했습니다.

22일 휴게실 논의에서 나는 평가단의 구성방식에 대한 논의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인사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도 어렵거니와 판단기준도 각자 다른 상황에서 사람의 성향을 진보다 보수다 중도다 해서 판단하기도 어렵고 갑론을박을 해보아야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하다고 판단되므로 여권추천 야권추천 이사들이 각 분야에 한 명씩 추천하는 KBS의 방식이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 이사는 다음부터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왜 지금 고칠 수 있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유 이사는 이 자리에서 내가 추천한 모 교수에 대해 노조출신이라며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노조출신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MBC에서 피디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학자로서의 경험도 있어 누구보다 이번 평가단에서 좋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었던 인사입니다. 노조출신이어서 안 된다는 유 이사의 주장이야말로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리곤 12월22일 이사회가 끝나고 유 이사는 느닷없이 내게 “한쪽만의 시각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보도 시(또는 명예훼손시) 언론중재 및 법원에 제소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메시지에는 “균형보도를 위해 언론사 취재에 응하겠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내가 기자도 아니고 어느 매체에 속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뜬금없이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니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지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유 이사는 참으로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 이사는 편지에서 ‘체계화된 시스템’을 운위하면서 “‘야권이사-진보언론-관련단체’에 의한 릴레이식 인격살인 작업이 가동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언론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언젠가 이사회에서 유 이사는 내가 속해 있는 민언련이 종북단체이며 따라서 내 사상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해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악의적인 명예훼손 아닌가요.

좋습니다. 누구나 사상의 자유가 있고 어떤 종류의 상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인에게 알리는 데는 자신의 표현이 그 표현 대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의선 이사가 미디어워치에 보낸 편지에서 강조했던 ‘균형잡힌 보도’를 위해서 말입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MBC개혁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는 계기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2016년 병신년 1월 이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