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기자, ‘미워할 수 없는’ 영원한 고발기자 이상호

[기자열전] 배달호 열사 죽음 후 ‘자본독재’에 눈떠 삼성 X파일에 목숨 걸었던 공영방송 기자 21년… “무너진 구옥 MBC 재건 꿈꿀 것”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이상호 기자는 외쳤다. ‘기자는 받아 적는 자가 아니라 묻는 자여야 한다.’ 이상호는 ‘감히 묻는 자’였다. 기자에게 말한다. 이상호의 물음은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물었어야 했고 당신의 질문이어야 했다. 이상호의 물음은 그리하여 지금의 언론이 얼마나 자괴(自愧)한가를 발가벗겨 드러내 줬다. 동료를 쫓아낸 회사에서 MBC 뉴스는 오늘도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돌리며 불문의 전파를 쏘아 올릴 것이다. 그렇게 이미 묻는 자는 차차 사라질 것이며 더 이상 묻지 않는 기자들은 더욱 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두렵고 초라하다.”(5월3일 MBC 기자협회 성명)

이상호 기자가 21년간 몸담은 MBC를 떠났다. 이 기자는 대법원 해고무효 확정판결 후 지난해 7월 복직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정직 6개월의 재징계를 받았다. 올해 2월5일 이 기자가 심의국 TV심의부로 복귀하자 MBC 사측은 석 달 만에 다시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였다.
이 기자는 2일 회사로부터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자 다음 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보도국 대기 발령은 물론 사내 게시판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등 MBC에서 더 이상 기자로서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며 “이제 국민의 기자가 되기 위해 두려운 가운데 MBC를 떠나 광야로 나서려 한다”고 밝혔다.
MBC는 어떻게든 이상호의 입을 막으려고 애썼다. 수많은 특종보도를 쏟아냈던 민완 기자를 보도국 밖으로 내쫓은 것도 모자라 MBC 보도와 보도국 간부를 비판하는 이 기자의 글을 삭제하고 게시판 접근 권한도 차단했다. 그리고 정직 기간 중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구조 실패 책임을 묻는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을 제작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계했다.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MBC 4년은 굴욕이었다”

이 기자는 “박근혜 후보 당선 직후 회사는 ‘회사 명예실추’와 ‘품위유지 위반’을 이유로 나를 해고했고, 2년6개월이 걸려 대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복직 1개월 만에 동일한 이유로 내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며 “6개월 뒤 회사에 돌아오자 사측은 해고와 정직 기간을 거치는 동안 만든 ‘다이빙벨’과 ‘대통령의 7시간’ 등의 다큐를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4년여의 반복되는 징계 과정을 거치며 나의 심신은 그야말로 피폐해졌지만 사측이 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MBC를 떠나는 것인 줄 잘 알았기에 굴욕스런 과정을 모두 견뎌냈다”며 “공영방송 회복을 위해 한직이나 낯선 근무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MBC 선후배들께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밖에서 더 열심히 돕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조능희 본부장)는 10일 “1000일 가까이 MBC에서 쫓겨나 있으면서 다시 ‘MBC 기자’로 현장을 뛰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버텨온 그였다”며 “MBC를 바로 세우는 그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MBC를 떠나간 이들을 모두 다시 맞이할 것이다. 이 기자의 사표 소식에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많은 MBC 구성원들에게 노조가 드리는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 기자는 누구보다도 MBC 정상화를 바랐던 기자 중 한 명이었다. 2012년 지승호 작가와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이상호 GO발뉴스’에서 이 기자는 “잘못 뽑은 한 사람의 대통령이 얼마나 크게 역사를 퇴행시킬 수 있고, 잘못 앉힌 사장 하나가 국민의 방송을 완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차라리 약으로 삼아야만 하는 시대, 시용 기자니 구사대 기자니 하는 반문명적인 단어들이 흉가의 유령처럼 가득한 오늘, 무너진 구옥 MBC와 대한민국 언론의 재건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많은 이들에게 ‘스타 기자’라고 불리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때론 MBC 조직 내에서도 ‘소영웅주의에 휩싸인 공명심 가득한 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 기자는 2001~2002년 연예계 ‘노예계약’과 뇌물 관행인 ‘PR 비리’를 고발했고, 당시 연예제작자협회 측은 이 기자를 상대로 무더기 소송을 거는 등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이후 잇달아 터진 ‘연제협 사태’로 MBC를 비롯한 방송사 PD들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 기자는 지승호 작가와 인터뷰에서 “연예계 뇌물 사건을 파헤쳐서 MBC 예능국 선배들도 나 때문에 여럿이 구속됐고, 심지어 MBC 광고부장은 이중협찬 계약서를 가지고 돈을 빼돌리다 나 때문에 해직됐다”면서 “그때 한여름에도 회사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고 PD들을 매일 마주치니까 고개 숙이고 스카프를 매일 하고 다녔다”고 술회했다.
이후 이 기자는 연예계 비리와 관련한 9개의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고, 2007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복지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한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로부터 “다수의 고발보도로 대중문화 사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복지향상에 기여했다”며 공로상을 받았다.
이 기자는 수상 소감을 통해 “뒤늦게나마 연예인들 스스로 MBC의 보도를 평가해 줘 다행스럽다”며 “공영성에 입각한 보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MBC가 뒷받침해준 데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 같은 ‘또라이’ 한 명쯤 있어야”
이 기자는 또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한 기자로 유명하지만 삼성으로 상징되는 자본권력의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을 취재하면서부터였다. 이 기자는 배달호 열사 취재가 삼성 X파일 보도를 위한 자양분이 됐고 우리 시대가 뭐가 잘못됐는지, 정치권력도 중요하지만 자본권력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가압류라는 것이 총 든 군인이 총 들지 않은 사람들을 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노동자들은 노동력밖에 없으니까 노동하는 사람들이고, 자본가는 자본밖에 없으니까 그 자본을 가지고 노동을 시키는 사람들인데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은 거잖아요. 손배 가압류라는 것은 비인도적인 거란 걸 알게 됐고, 노동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충분히 갖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움을 넘어서 죄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노동에 대해서 기사를 쓰지 않으면서 오히려 검찰 출입하면서 대검 공안부나 그런 데서 불법 파업에 대해서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스트레이트로 전하고 그랬던 거에요. 그때 정말 충격적으로 부끄러웠죠.”
2005년 7월22일 이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삼성의 2인자였던 이학수 비서실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시사항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전달하는 상황을 도청한 국정원 테이프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국정원이 사상 초유의 검찰 압수수색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2006년 8월11일 이상호 MBC 기자가 ‘삼성 X파일 보도’에 대한 1심 법원의 ‘무죄’ 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이 보도를 했던 이상호 기자는 이후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조직에서 왕따를 경험했고 취재 일선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2011년 ‘손바닥뉴스’로 취재 현장에 복귀했지만 김재철 MBC 사장이 ‘제2의 나꼼수’를 우려해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했다. 이 기자는 미국 유학 후 2012년 삼성 X파일 사건 당시의 취재 기록을 책으로 묶어 ‘이상호 기자 X파일 사건’을 발표했다.

이 기자는 “나는 이 사건을 ‘안기부 X파일이 아니라 삼성 X파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기부 X파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의 핵심에 삼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목적이 아닌가 의심한다”면서 “삼성은 다른 기업이랑 다르다. 삼성이라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취재를 했고 보도를 했다. 우리 시대 자본독재의 최상위에 있는 자본 맹주의 권력남용이라고 생각하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삼성이랑 싸워서 미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거의 없을 것”이라며 “삼성은 마지막 인간적 영역, 우정이든 사랑이든 하는 부분까지 돈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그게 여러분들이 보는, 자본독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이 버려놓고 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라고까지 했다.
실제 그가 보도국 기자 시절 존경했던 이인용 전 MBC 보도부국장(현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 X파일 취재내용을 보고해야 하는 계선 상에 있는 선배였다. 어제까지 삼성에 관해서 자기에게 보고받았던 사람이 내일이면 삼성 홍보전무, 컨트롤타워로 간다는 소식에 이 기자가 받았던 충격은 컸다.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게 삼성으로부터 어떻게 사육되고 있느냐 하면 광고를 통해 사육된다. 재정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MBC만 해도 협찬까지 따지면 20% 전후의 광고를 삼성한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이인용 당시 부국장의 삼성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게재한 기사를 단 한 건도 못 봤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기자회에 성명 작성을 제의했다. 거기서 보름 만에 온 답변은 선배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성명을 발표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삼성은 이 기자의 회사 동기도 스카우트해서 갔다. 이 기자는 “이인용 한 사람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대한민국에서 MBC만 맘대로 안 된다 그래서 삼성경제연구소 부장으로 승진해서 갔다”며 “그가 실제 하는 일은 구조본의 언론 담당이었는데 나중에 MBC 뉴스 큐시트를 해킹하다가 걸려서 결국 잘렸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책임 물을 것”
노무현 정부도 이 기자의 자본독재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기자는 “모두가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면서 이제 민주화는 됐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절차적 민주화의 완성된 틈으로 자본의 이해관계가 모세혈관처럼 퍼져 나가면서, 결국 국민들 피땀으로 만든 민주제도를 자본의 편익을 위해서 운영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완성되고, 자본독재가 삼성이라는 이상 돌연변이를 일으킨 자본에 의해 독재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 발견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자기들이 스스로 국가 권력의 빗장을 열어줘 놓고 ‘이상하게 시장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게 됐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현상적으로만 설명했고 잇따른 친재벌, 친삼성 행보 등 잘못된 경제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삼성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에 일조했다는 주장이다.
2012년 1월31일 MBC ‘손바닥뉴스’의 이상호 기자(가운데)가 민주화투쟁 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오른쪽)와 함께 서울 연희동 전두환 자택 앞을 방문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기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문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찍어내기’를 당했지만, 박 대통령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특별히 이 기자의 주된 관심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면서 ‘대통령의 7시간’과 ‘다이빙벨’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세월호 의문은 그에게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가 됐다.

이 기자는 지난 2월 6개월 정직 복직 후 다큐멘터리 제작과 관련한 사측의 추가 징계 방침에도 “언론사라면 당연히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물었어야 했으나 어느 누구도 묻지 않았다”며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대통령도 스스로 인정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논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87학번 1학년 시절 2학년 과대표였던 이한열 선배의 죽음이 그를 기자로 만들었다는 이상호. 박근혜 정부와 ‘친정부’ 보도의 첨병이 된 공영방송 MBC는 그의 MBC 기자 생명을 끊어 놓은 최루탄이 되고 말았다. MBC 기자협회의 성명대로 이 기자에 대한 ‘징계’는 답해야할 자를 대신한 MBC의 응답이자 충성이었다. 스스로 상식의 회복을 위한 깨진 벽돌이 돼버린 그가 이제 다시 고발기자로 살기 위한 힘겨운 출발을 하게 됐다. 이 기자가 ‘나에게 가장 즐길 만한 일이 기자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한 대로 지치지 않는 ‘또라이’ 고발기자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