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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간첩? 조선·MBC의 막가파식 보도

[캡처에세이] 이런 보도를 내보내는 조선·MBC ‘당신들’의 정체는?

민동기 기자  mediagom@mediatoday.co.kr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서를 건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 놓고 국가 비밀문서를 건넸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6월25일 MBC <뉴스데스크> ‘비밀문서 건넸나?’ 리포트 가운데 일부분이다. 비슷한 기사는 26일자 조선일보 <盧가 金에 “심심할 때 보라”며 건넨 보고서의 정체는…>(3면)에도 실렸다.

조선일보와 MBC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말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건넨 ‘보고서’의 정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 보고서에 국가 기밀이 포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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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5일 MBC <뉴스데스크>

두 언론사는 “노 전 대통령이 북한에 국가 기밀을 넘겨줬다는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조선일보) “일각에서는 이 문서가 비밀문서에 해당한다며 우리측 전략을 북한에 노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MBC)는 내용을 전하며 의혹 확산에 나섰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와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해명을 싣긴 했지만 조선일보와 MBC는 대한민국 국가정상이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국가기밀’ ‘비밀문서’를 전달 혹은 노출한 의혹이 일고 있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전직 대통령=간첩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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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3년 6월25일자 3면

이런 엄청난 의혹을 제기하는 두 언론사의 ‘근거’는 뭘까. 없다. 조선일보는 “일부에서 의혹을 제기”했다는 게 근거의 전부. MBC 역시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근거로 제시했을 뿐이다.

사실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를 보면 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가 대략 설명돼 있다. “남북한 경제협력을 할 경우 북한에 어떤 이득이 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자료” “개성공단 확대,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 등 경제협력 방안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김경수) “40여 가지 대북 제안을 김 위원장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내용”(천호선) 등이 그것이다.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 대략 논의해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조선일보와 MBC가 ‘비밀문서’ 의혹을 제기하려면 이 내용과 다른 ‘어떤 것’이 있었는지 근거를 제시하는 게 온당하다. 그것이 없다면 이 리포트는 새누리당의 ‘정치공세’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MBC 보도에는 ‘일각에서’라는 표현을 제외한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막가파 보도’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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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5일 SBS <8뉴스>

사실 국정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특히 발췌본은 어떤 목적과 경위로 만들어졌는지 불투명하다. SBS가 25일 <8뉴스>에서 보도한 것처럼 “제작 특성상,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이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역풍이 불고 있는 배경이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국정원이 전문에 앞서 공개한 발췌본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돼 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 등은 이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대화가 아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며 저자세로 회담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보고’란 당시 북측 김계관 부상이 정상회담 중간 6자회담 경과를 남북 정상에게 보고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보고를 한 게 아니라 보고를 받은 셈.

지난해 10월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NLL포기 발언’도 마찬가지. 당시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NLL포기’ 논란은 이후 불거졌다.

하지만 이번 대화록을 보면 ‘NLL포기 발언’도 없고,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란 부분도 없다. 새누리당이 제기한 의혹의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여론의 흐름이 새누리당과 국정원에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다.

‘현직 기자 10명 중 8명이 국정원의 이번 회의록 공개가 부적절 또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답변(미디어오늘)하고, 보수신문인 중앙일보가 26일자 사설에서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여론의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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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6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은 “무엇보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논란이 한창인 시점에 공개를 결정한 데 대해 의문이 나온다”면서 “국정원은 부인하겠지만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앞으로도 정상회담 때의 대화 내용이 일부 노출될 때마다 (국정원은) 계속 기밀을 해제해 공개하겠다는 건가”라고 되물은 뒤 “그럼 도대체 어느 나라 정상이 우리 대통령과 속 깊은 얘기를 하려 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혹확산에 주력했던 KBS가 25일 <뉴스9>에서 잠시 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SBS는 “발췌본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제작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는 보도태도를 보인 것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MBC에는 ‘국정원 발췌본 제작경위에 대한 의혹도 없고, 새누리당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과 다르게 드러난 부분에 대한 검증’도 없다. 오로지 NLL 의혹 확산과 막가파식 보도만 있을 뿐이다. 근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에게 ‘간첩 혐의’를 제기하는 ‘당신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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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25일 MBC <뉴스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