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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기자들 “싸우라? 우리가 사라지는 것밖에 없다”

“파업해도 ‘시용기자’들이 뉴스 제작한다”… “‘공영방송’ 버릴 수 없는 가치라면 싸움과 연대 고민해야”

조수경, 김도연 기자,  진도 팽목항 = 이하늬 기자  jsk@mediatoday.co.kr

MBC 구성원들은 2012년 방송 공정성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뒤에도 ‘김재철 체제’는 이어졌다. MBC 구성원들의 ‘침묵’도 시작됐다. 친정부 보도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고 세월호 국면에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MBC 구성원들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편집자 주>

“참담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내가 언론인이라는, MBC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너무 부끄럽다. 차라리 뉴스를 없애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MBC 보도는 기자들에게 심한 자괴감을 안겼다. 지난 7일 박상후 보도국 전국부장의 세월호 유족 폄훼 보도가 나가자 30기 이하 121명 기자들이 사과 성명을 냈다. 기자들은 “한 마디로 ‘보도 참사’였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박상후 부장이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그런 X들, 관심 가질 필요 없어’라고 말하고, 김장겸 보도국장이 편집회의에서 ‘유족 맞아요? 완전 깡패네’라고 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MBC본부는 진상규명하라고 반발했다. 또한 이성주 MBC본부장은 삭발을 하고 사내 로비에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MBC본부와 기자회는 사측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는 상태다. KBS 구성원들이 세월호 보도를 계기로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들어가자 MBC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MBC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것이다.

싸우는 KBS와 대비되는 지금의 MBC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지만, 2012년 7월 ‘보도 투쟁’을 선언하며 파업을 접었으나 지속적인 편파 보도에도 눈에 띄는 저항이 없었던 MBC 구성원들의 오랜 침묵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MBC는 대선 당시 ‘최악의 보도’로 꼽혔고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청와대의 ‘채동욱 혼외자식’ 개입 논란 등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반면, <뉴스데스크>는 ‘동물뉴스로 전락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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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언론노조 MBC 본부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 기자들은 “우선 남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A기자는 “MBC가 ‘칼춤’을 추는데 누가 나가서 싸울 수 있겠느냐. MBC는 KBS보다 훨씬 더 비정상적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B기자는 “현재 MBC는 그야말로 정권 차원에서 장악당하고 있어 해고나 해고에 준하는 중징계를 받는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12년 170일 파업에 대한 ‘트라우마’도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남아 있었다. MBC는 파업 과정에서 9명(2명은 현재 복직)을 해고했고,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정직과 감봉을 남발했다. 기자·PD들에 대한 업무배제 및 비제작부서 발령이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14~15년차 데스크급 기자 2명이 별 다른 이유 없이 비보도부문인 글로벌사업본부 경인지사로 발령났고, 박상후 부장의 문제의 리포트를 자신의 카카오톡에 올린 한 기자를 ‘사내 정보를 유포했다’며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B기자는 “(정권은)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위험성을 전한 <PD수첩>에 사과방송 명령을 내리는 등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친박방송’으로 탈바꿈시켰다. 어떠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도 안고 갔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차 없이 해고하는 생계살인을 저질렀다. 물론 이런 탄압을 겪었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지만 양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싸울 조건이 맞으면 싸울 것이고 (탄압이)두려워서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어느 조직이 몇 년을 계속 싸우고, 전쟁 하자마자 또 전쟁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기자도 있었다. C 기자는 “회사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심각한 스트레스가 쌓인다. 일절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뭐라 드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안타깝지만 MBC는 임금 받으러 오는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고도 했다.

물론 이들이 ‘상처’만을 이유로 싸움을 주저하는 건 아니다. 저항이 가져올 미래가 매우 암담하다고 보는 현실적인 고민이 크다. 한 해직언론인은 “우리는 파업 이후 사실상 궤멸되다시피 했다. KBS는 경력 혹은 시용 기자를 뽑지 않았지만 MBC는 50명 이상을 채용했다. 싸움의 동력은 기자인데 물갈이를 하니 또 다시 집단행동을 했다가는 그나마 보도국에 남아 있는 기자들도 다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다”면서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해도 경력·시용 등의 기자들과 내부에서도 돌아서는 기자들이 <뉴스데스크>를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MBC 경영진이 저항을 오히려 보도국의 ‘DNA’를 완전히 바꾸는 기회로 악용할 것이란 얘기다.

이런 우려는 MBC 기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D 기자는 “수십 명이 잘려도 쉽게 충원되는 구조가 됐기 때문에 인력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는 먹히지 않는다”면서 “전원이 사표를 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 기자는 “예전에는 1대 9의 비율로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현재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비율이 줄었다.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세력이 많아졌고, 회사에서 발생하는 사안에 무관심하거나 동료들의 징계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며 굉장히 냉소적으로 변한 사람들도 많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장기적인 싸움을 위해 ‘동력을 남겨놔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다. E 기자는 “보도투쟁은 이미 상당부분 수많은 징계를 통해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파업을 하자니 ‘시용기자’로 인해 무의미하게 됐다”면서 “그래서 단순히 이 시기를 견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징계를 받아서 보도국에서 배제되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란 생각으로 버티는 것이다. 언젠가 MBC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치욕을 참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금 정면으로 싸우면 우리가 얻을 것은 없지만 잃은 건 많다. 결국 우리는 사라지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MBC를 둘러싼 대외적 환경이 바뀌어도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정권이)MBC를 이미 철저하게 무력하게 만든 의도가 있었고 보도나 공적인 요소가 장악됐다”면서 “현 MBC 구성원들은 남아서 무력하게 있거나 아니면 떠나야 하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하도록 종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사무총장은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걸 알지만 더 무너지면 미래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공정방송 MBC가 버릴 수 없는 가치라면 싸움과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MBC를 구할 ‘골든타임’은 지났다”라는 시각도 있다. MBC를 언론사로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막말’과 KBS 보도는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작 MBC 보도와 보도국 간부들의 폄훼 발언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인식에서도 나타났다. 진도 팽목항에 있는 한 실종자 가족은 “MBC간부들이 그런 막말을 한지 몰랐다”고 말했고, 다른 실종자 가족도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E 기자는 “진도 팽목항에서 점퍼 입고 돌아다니면 두들겨 맞을 줄 알았는데 MBC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노조의 고민도 깊다. 이성주 본부장은 “19일 안산에서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너희 목숨 보존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면서 “싸워야 한다는 말에 100% 동의하고 ‘공정방송이 제1의 근로조건’이라고 한 판결문을 봐도 지금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파업 전에는 단체협상과 공정방송협의회 등 합법적인 통로가 있었지만 현재 이마저도 없고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전혀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조합원들이 발언할 수 있는 통로가 모두 막혀 있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파업도 불법이라고 말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단체협약조차 없는 상황에서 조합이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다는 얘기다.

F 기자는 “기자들은 징계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인사조치 돼 대체기자가 채용되는 것을 더 걱정한다. (성명 등)말로만 싸우는 것은 한계가 있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MBC에 대한 여론의 관심 자체가 없는 등 여건이 너무 안 좋다. 하지만 MBC 기자들의 속성상 한 번 불을 댕기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