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아빠 “‘그만해라, 지겹다’ 이런 시선이 따갑다”

“살았을 때도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목숨 내놓고 싸우라면 싸울거다… 억울해서 그런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다시 여름이다. 김영오씨(유민아빠)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했던 게 벌써 1년 전이다. 세월호를 통해 그를 만났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 시기다.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힘으로 목숨 건 진상규명에 뛰어들었을까? 문화다양성포럼과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은 30일 오후 서울 경향신문 별관에서 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어렸을 때 예술에 소질이 있었다. 글자도 모르던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면 동네에 소문이 났다. 중학교 들어가서 작품을 만들면 선생님이 가져갈 정도였다. 그는 안양에 있는 예술고등학교를 알아봤다. “형, 누나와 4명이서 천안에서 자취를 하는데 누나가 봉제공장에서 돈 벌어 우리를 가르쳤다. 난 중학교 가자마자 신문팔이를 했다. 월급은 1만5000원.”

가난했던 김씨는 예고를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진학한 공업고등학교. 붓이 아닌 용접봉을 들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하며 1년을 버티다 가출을 택했다. 짧은 학벌로 좋은 회사에 가긴 어려웠다. 공장에서 기름을 묻히거나 짜장면 배달을 하며 살았다. 돈은 모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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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고(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사진=이치열 기자

남대문에서 옷장사도 했다. 당시 유민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딸 유민이와 유나도 얻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어린 딸과 아내에게 모든 걸 주고 김씨는 혼자 빚만 떠안고 집을 떠났다. 이혼 이후에도 불안한 삶은 계속됐다. 김씨는 당시 졌던 빚을 아직 갚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김씨는 큰 딸 유민이를 잃었다. “(이혼한지) 10년이 지났는데 생각해보니 (돈이) 없다는 핑계로 휴가를 4번밖에 가지 못했다. 유민이하고 유나가 삼겹살을 구워주면 좋아했다. 입에 넣어주고…이런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유민이) 살았을 때도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목숨 내놓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라면 싸울거다. 억울해서 그런다.”

김씨는 지난해 7월 14일부터 배를 채우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는 천막이 설치됐고, 단식에 동참하는 가족들과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단식 전 그가 세월호 가족대책위에서 일을 할 때 유민이 앞으로 여행자 보험금과 건강보험금이 나왔다. 모두 유민엄마와 유나에게 주고 한 푼도 갖지 않은 채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이 이어지면서 보수단체와 조선일보 등 언론에서 김씨에 대해 근거없는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혼하고 딸을 챙긴적이 없다’거나 ‘돈을 더 타내기 위해 단식을 한다’는 식의 공격이었다. 그는 이혼 직후부터 자신이 딸들에게 보낸 생활비 내역을 뽑아 세월호 관련 간담회 자리에 들고 다닌다. 김씨는 스스로 비워가며 진실을 위해 버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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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일간 단식했던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그가 지난달 16일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있다. 목숨을 건 46일의 단식을 단순히 ‘좀 더 받자’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을까? 사진=교황방한위원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71일째다.(30일 현재) 긴 시간을 버텨온 그는 요새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때가 많다. “주변에서 힘내라는 말을 듣지만 밖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 ‘그만해라, 지겹다’ 이런 시선이 따갑다. 잊혀지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

김씨는 “세월호 인양과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운영에 시민들이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세월호 선체 자체는 증거다. 그리고 9명의 가족이 있다. 배를 자르는 것만이 훼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수중촬영을 지금 해놓자는 것이다. 정부는 이마저도 막고 있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현재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업무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당 추천 위원들의 노골적인 방해가 이어진다는 비판이 수없이 제기돼 왔다. 김씨는 “특조위가 제대로 출범해야 하는데 반쪽짜리로 만들어놨다. 그런데 시행령에서 모법(세월호 특별법)을 벗어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자제하고 특조위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하는 이유도 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해 국가의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배상금은 늘어난다. 하지만 김씨는 “돈은 주는대로 받을 거다.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진실을 밝히려던 김씨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통해 ‘나쁜 놈’이 돼 있었다. 세월호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평생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1년을 지나 2년을 향해 가는데 길을 다니며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는 10여년 전 가난과 이혼으로 고립됐던 시절 썼던 ‘무인도’라는 시를 낭독했다. “무인도에선 이른 아침에 울어대는 새 한 마리가 지쳐 잠든 나를 깨워준다.” 지난해 세월호 가족들과 연대하던 시민들을 보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가 다시 고립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