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으니 됐다? 세월호 생존자들의 상처

학생 잃은 교사들·생계 잃은 화물기사들…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지원 없거나 5년으로 제한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세월호 침몰 457일(16일 현재), 광화문 광장 농성 1년.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아직 한국 사회가 기억 속에 넣지도 못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4·16인권실태조사단(조사단)은 지난 5개월 동안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세월호 피해자들을 만난 기록,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이 박탈당했던 권리 등을 담은 ‘4·16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우리 몸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장 아픈 곳”이라며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자들은 비명을 지를 권리가 있는데 이 사회는 그 비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인권이 침몰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조사단은 세월호에 탔다가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생존자들은 ‘살아서 돌아왔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식의 시선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생존자 이아무개씨는 “배 가운데서 (바닷물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다 빨려 들어갔다. 그 소용돌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며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생존자들은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언론과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했다. 한 생존 화물기사는 “내가 원하는 말은 언론에 나온 적이 없다. 인터뷰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라며 “‘너네들은 살았으니까 됐다는 시선을 언론에서 심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사가 갈리는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생존자 뿐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도 고통 받는 것은 매한가지다. 한 생존학생의 부모는 “침몰 당시 영상을 보면 실제로 아이들을 꺼내준 건 어선이더라. 깜짝 놀랐다”며 “해경은 구경하러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희생자 가족은 “국가가 미리 준비를 해서 온 것이 아니라 가족들 얘기를 듣고 수색방법을 바꾸더라”며 실망한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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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촬영 기자들이 지난해 4월 2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로 사망한 시신을 확인하고 앰뷸런스로 향하는 유가족을 밀착 취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돈을 좀 줄 테니 인터뷰를 하자는 기자들”에 상처받은 피해자 가족과 “아이도 초상권이 있는데 가족이 원치 않아도 계속 내보내 전 국민이 알아보도록 만들었다”며 불쾌해하는 피해자 가족도 있었다. 이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는 형식적이었다. 한 생존학생의 부모는 “남편과 관계를 회복해볼 생각은 없냐고 묻는 게 다였다”며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심리 상담을) 딱 한번 하고 안 한다”고 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중 수학여행에 가지 않아 세월호에 타지 않은 13명의 학생들도 있다. 친구들을 잃었다는 충격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국가의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 당시 단원고 1학년과 3학년이었던 학생들도 선후배를 한꺼번에 잃는 고통에 겪었지만 이들에 대한 배려도 없다. 오히려 무방비로 취재에 노출되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단원교 교사들도 상처를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생존학생 부모 오아무개씨는 “교사들도 트라우마가 커 상담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심리가 불안하니 욱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방치돼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교사들도 진도에 내려가 시신을 확인하고, 슬픔에 잠긴 학생과 그들의 가족들을 대하며 지쳐갔다.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4명 중 2명이 사망하고 2명은 생존했다. 이들은 군 영장이 나온 상태였다. 이들은 현재 군 생활 중이다. 이밖에도 세월호와 함께 생계수단인 화물차가 함께 침몰해 빚더미에 앉은 화물기사들, 삶의 터전이 참사지역이 된 진도어민들, 말이 통하지 않아 제대로 된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이주민 희생자 등 세월호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은 그 나름의 이야기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피해지원이 이루어지는 기간도 5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이가원 팀장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 일정이 빠듯해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 프로그램이 개별적인 필요를 맞추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진행돼 오히려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며 “5년의 지원기간이 끝나도 치료가 끝나지 않거나 재발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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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24일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실내체육관에 모여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세월호 희생자 시신을 직접 껴안아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들도 경제적·육체적·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잠수병에 괴로워하거나 수습 당시 창문을 깨거나 문을 뜯다가 디스크에 걸린 잠수사들도 있었다.

잠수사들 중 고참으로 당시 현장을 이끌었던 공우영 잠수사는 “잠수사들에게 세월호에 대해 설명을 해주거나 도면, 사진 등의 자료를 주는 곳은 없었다”며 “해양수산부 장관이 희생자 가족들에게 항의를 받으면 수색작업하던 공간을 다른 곳으로 바꾸라고 지시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잠수사 공씨는 현재 잠수사 동료 2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해경의 책임마저 뒤집어 쓴 상황이다.

현재 25명의 민간잠수사 중 7명은 각종 어려움으로 생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한 잠수사는 “이런 일이 또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만약 발생하게 되면 누가 나서서 이런일을 돕겠느냐”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곳곳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들도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해체 이후 지원체계가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중병으로 세상을 뜬 이들도 있다고 알려졌다.

4·16인권실태조사단은 인권활동가, 사회복지사, 연구자, 학생 등 46명이 참여했고, 45명의 피해자를 만나 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가원 팀장은 “참사는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사고가 참사로 변하는 것은 사회적 제도가 취약하거나 실패한 결과”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이것을 파악하고 기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이 보고서의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