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지친다면 거짓말, 아내와 또 울고 왔다”

[현장] 2016년 새해, 팽목항분향소 찾은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 “우린 더 잃을 게 없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의 아버지 최경덕씨는 “세월호가 인양되면 ‘세월호 지우기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부는 ‘이 정도로 뭉개니 뭉개지네?’라 생각하고 있다. 올해 총선이 지나면 완전한 지우기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올해 총선이 열리는 4월13일은 세월호 2주기 3일 전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1월1일 전남 진도 팽목항 인근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담담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았다. 지난밤 팽목항 분향소에서 잠을 청한 유가족들은 함께 인근 여귀산 돌탑에 올라 새해 첫 일출을 지켜봤다.

단원고 고 안중근군 어머니는 여귀산 아래에서 “아들, 딸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약속을 못 지킨 채 시간이 많이 흐르니 지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를 상기했다. 가족들 중 가장 강한 어조를 유지한 최경덕씨도 “안 지친다면 말이 안 된다”며 “해 떠올 때 아내와 함께 팽목항 방파제에 있는 등대에 가서 한 번 울고 왔다”고 말했다.

▲ 2016년 1월1일 팽목항 인근 여귀산 돌탑에서 시민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2016년 1월1일 팽목항 인근 여귀산 돌탑에서 시민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유가족들의 지난해는 “울분이 쌓이는 해”였다. 최씨는 “1월달엔 세금도둑 운운했던 김재원 의원이 가장 미웠고 다음엔 유가족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특조위 방해 행위’에 대해 깊은 분노를 표했다. 고 장준혁군 아버지 장훈씨는 “700만 명이 서명해 만들어진 위원회인데 정부는 시행령으로 이를 무력화시키고 정당한 요구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이준우군의 아버지 이수하씨도 “정부 방해와 청문회 증인들의 답변 태도들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우리가 기대를 걸었던 마지막 조사방법이 작동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됐던 것은 또다른 유가족이었다. 고 김건우군의 아버지 김광배씨는 ‘5인방’을 소개했다. 살아생전 단짝으로 지냈던 자식들의 인연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8반 이재욱, 김재훈, 김건우군과 4반 최성호군, 7반 이준우군의 아버지들이 만든 모임이다. 평생 참사에 대한 상처를 안고 갈 것 같다고 밝혔던 김씨도 “5인방은 사는 목적이라고 할 만큼 살아가는 의지가 되고 든든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년 동안 유가족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혈압, 지방간, 당뇨 등 2년 전엔 없던 성인병에 걸렸다. ‘종합병원’이라 불리는 최경덕씨도 한 달 전부터 몸 마디마디에 통증이 느껴져 가족협의회 활동을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부모들 모두 속병이 들었다.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 한은 약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자식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소원하고 있었다. 현재 ‘5인방’ 부모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5인방의 회장이라고 불리는 김씨는 “진실을 규명하고 정부의 책임을 인정받는 것이 아들의 명예를 찾는 것”이라면서 “돈 때문이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 부지 내 한 가건물에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의 수습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 부지 내 한 가건물에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의 수습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를 위해 현재 유가족들은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최씨는 “가족협의회는 사단법인화가 될 것이고 1월 중으로 협의회 임원들이 교체되며 다시 새롭게 싸울 준비를 한다”고 밝혔다. 총선 후 진상규명의 움직임이 무력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협의회는 앞으로 두 번 남은 특조위 청문회와 특검 준비에도 적극 임할 예정이다.

최씨는 “작년 여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내년 이맘때에도 내가 이러고 있을까였다”며 “630일이 되는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도 2, 3년 후에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을까이다”고 말했다. 최씨는 “(유가족들은) 투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바뀌어 갔다”며 “아이들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게끔 개인적으로나 가족협의회 차원으로나 좀 더 단단해질 것”이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