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오래 살겠다’던 아이의 ‘生’은 열여덟에서 멈췄다

[미디어 현장] 정운 참세상 기자

정운 참세상 기자 media@mediatoday.co.kr

딸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는 그리움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고싶어 온 방을 뒤졌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시간이 흘러 아이의 방에서 ‘아이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 슬프고 무섭다고 전했다. 지난해 ‘빈 방’ 촬영을 갔을 때의 일이다. (‘빈 방’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방’을 촬영해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수십 명의 사진가가 틈틈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 함께하고 있다.)

평범한 방에 둘러앉아 가족들의 일화를 들으며 가만히 미소 짓다가, 곳곳에서 나오는 녹슨 물건들에 현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 형체만 간신히 남아있는 휴대전화, 색이 진해져 얼굴이 새파래진 사진, 빛바랜 속옷 같은 걸 보물처럼 꺼내놓는 손길은 몇 번을 경험해도 아팠다. 하필 그 날은 비 소식이 있어서 대부분이 우산을 챙겨갔다고 했다. 평생 간직할 옷가지에 우산 녹이 스민 안타까움에, 물건을 설명하는 손길은 계속 구깃구깃 옷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늘 카메라에 얼굴을 묻고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가장 큰 기억은 한 희생자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촬영했을 때다. 담담하려 노력했지만 생각지 못한 단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덜컹거리게 했다. ‘난 꼭 오래 살 것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 채워지지 못한 수학여행 일정 안내문, 준비물을 적어놓고 하나씩 X표를 쳐놓은 종이, 단 하나도 지우지 못하고 멈춰버린 버킷리스트까지. 카메라에 숨어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내 옆에, 시장에 가는 것도 목욕탕에 가는 것도 늘 친구 같던 딸과 함께하던 것이라 한참을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함께하던 일상에 혼자 서 있을 때 그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낀다는 말을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품을 찾아도 걱정, 못 찾아도 걱정이에요.” 지난 5일, 진도에서 만난 유가족은 말했다. 진도군청에서 보관 중이던 세월호 유류품을 사진가와 자원봉사자들이 기록으로 남기던 날이었다. ‘빈 방’ 촬영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으로 갔지만 느낌은 달랐다. 아들 물건을 지금껏 거의 찾지 못해 기대를 품고 왔는데, 막상 찾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그 소감이 알 듯 말 듯해 괴로웠다. 간혹 이름이 적힌 물건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날 바로 주인을 찾지는 못했다. 상자와 가방에서 ‘꺼내지는’ 물건들에 축축하게 묻은 모래, 비릿한 악취. 그것을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유가족의 모습 어디에도 현실감이라곤 없었다.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 세월호 유류품 기록. ‘빈 방’ 프로젝트. 사진=정운 기자

 

‘빈 방’ 촬영이 ‘이 흔한 물건’의 주인이 더 이상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었다면, 유류품 촬영은 ‘이 흔한 물건’의 주인을 찾지 못해 괴로운 일 같았다. 유가족은 가방이 하나씩 열릴수록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그 혼란이 그저 슬픔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들어보니 ‘보자마자 알 것 같았던’ 내 가족의 물건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 속상하다고. 충혈된 눈으로 자신이 작은 착각이라도 했을까 휴대전화 카메라로 꼼꼼하게 물건들을 찍어 갔다. 나는 또다시 카메라에 숨어 말없이 셔터만 눌러댔다.

“나라가 사람들을 구조하려 노력했다면 마음이 이렇지는 않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화가 난다.” 2015년 ‘빈 방’ 촬영 때 들은 유가족의 소감이다. 그러고부터 1년의 시간이 흘러 2016년, 진도에서 진행한 유품 촬영에서는 이런 소감을 들었다. “나라에서 해결 못 해준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을 우리가 현장에서 싸우며 하고 있는데, 이렇게 뭉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 믿는다.”

며칠이 지났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들의 젖은 감촉이 후유증처럼 손에 잡힌다. 1년 9개월이 흘러온 오늘, 이제는 그 ‘언젠가’를 함께 앞당길 때 아닐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