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잃고 대학가겠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리뷰] 세월호 생존 학생들 이야기 담은 SBS스페셜… “별이 되어 사라진 수백개의 꿈이 영원히 반짝이도록”

차현아 기자 chacha@mediatoday.co.kr

“누구나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그땐 몰랐는데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준혁이는 온종일 집에서 보내기 일쑤다. 게임을 하고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스무살 박준혁 군은 밖에 나가지 않는다. 함께 놀 친구가 없어서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준혁이는 혼자가 됐다.

지난 28일 방송된 SBS스페셜에서는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편이 방송됐다. 이번 SBS스페셜에서는 단원고를 졸업했지만 학교를 떠날 수 없었던,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시각에서 담은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날 이후 삶이 모조리 뒤집혀버린 아이들이 상처에 짓눌리는 대신 친구들의 꿈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려는 발걸음에 관한 이야기다.

준혁이는 그날 이후 모든게 뒤바뀌어버렸다. 친구 편지를 보고 새벽에 울거나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일들이 많았다. 바다가 그렇게 삼켜버린 친구들의 꿈은 준혁이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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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8일 방송된 SBS스페셜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편 갈무리.

준혁이는 세월호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준혁이는 복도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쓸려가는 걸 봤다. 준혁이는 복도에 물이 잠기자 무작정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끝까지 버텼다.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한 순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준혁이를 버티게했다. 그렇게 복도 밖으로 떠오른 준혁이는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나온 사람이 됐다.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나온 준혁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혼자 3학년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세월호에서 탈출하던 순간 함께 손을 잡고 있던 한 아이가 휩쓸려 사라지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준혁이의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혼자 3학년이 된 준혁이는 단원고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까지 안고 살게 됐다.

“우리끼리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라도 할 수 있다. 이제 대학 나가는데 사람들 시선도 너무 무섭다. 다 특례라고 욕할 것 같다. 왕따당할까봐 너무 무섭다. 되게 많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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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원고 학생은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무섭다”는 말을 반복했다. 단원고 특별 전형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섞인 비난 때문이다. 사회적 배려였음에도 일각에서는 과도한 특혜로 비춰졌다.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공격대상을 바꾸어 아이들을 향했다. 사람들은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받은 고통과 사고에 대한 진실보다도 그들이 받는 보상에 대해 더 궁금해 했다. 아이들은 상처받고 자신의 몸을 숨기며 살았다.

“페이스북에서 보면 또래도 많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이 나도 그냥 친구 잃고 대학가겠다는 식으로 글을 남겼더라. 그런 사람들 보면 나는 ‘그냥 대학 다 포기할 수 있고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으니까 네 친구랑 내 친구랑 바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단원고 생존자를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단원고 졸업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12일 단원고 졸업식은 사전에 등록이 된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왜 출입이 안되냐는 고성도 오갔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붙잡고 기자들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들이 세간의 시선에 상처받을까 걱정된 어른들은 카메라 앞에 선 아이들이 모자이크와 익명 뒤에 숨길 바랬고, 아이들은 꽃다발로 얼굴을 가렸다.

SBS스페셜은 박준혁 군의 시선에서 생존학생들이 앞으로 이어나갈 삶을 응원하고자 했다. 준혁이는 친구들과 못다한 수학여행을 계획했다. 만약 수학여행을 갔다면 함께 사진을 찍었을 법한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준혁이는 수정이의 사진을 집어들었다. 수정이는 준혁이가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있었던 친구다. 함께 손을 잡고 있었지만 거센 물살에 떠밀리다 생사가 엇갈려버렸다. 준혁이는 그날 그 순간 이후 머릿 속에서 수백번은 되감으며 자책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힘이 셌더라면, 그리고 수정이의 손을 조금만 더 세게 잡았다면 함께 나올 수 있었을까. 자신때문은 아니었지만 준혁이는 자신을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준혁이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준비했다. 그날 못다한 수학여행을 마치기 위해서다. 항상 어울려 지냈던 친구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날 이후 가슴깊이 묻어뒀던 수정이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외롭지 않도록, 누군가 친구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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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취재진은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는 준혁이의 표정을 살폈다. 준혁이와 처음 인터뷰했을 때와는 달라진 표정이었다. 어두운 표정에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던 준혁이는, 친구들과 못다한 제주도 수학여행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밝아진 얼굴을 보였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사진을 안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시선이 제일 무섭죠. 단원고라는 것에 대한 시선이요. 지금도 단원고 학생들 많이 욕먹고 있고. 부모님은 단원고 특례입학이라고 따돌림당하거나 안 좋게 바라볼까봐 걱정하시는데 저는 걱정없죠. 제가 잘하면 욕 안 먹을거고. 못하면 욕 먹어도 싸고. 그런 생각이에요. 가서 열심히 하면 되겠죠.”

이번 SBS스페셜에서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하나씩 덧붙인 아이들의 힘겹지만 용기있는 한 걸음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살아남았기에 살아내야 했던 아이들의 삶은 힘겨웠지만 아이들은 친구들의 꿈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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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을 맡았던 배우 여진구는 단원고 친구들과 동갑내기다.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마친 여진구는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