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엔 차례상 대신 9인분 떡국, “제발 돌아와 줘”

[르포] ‘기다림의 등대’ 앞 주인 없는 밥상… 실종자 가족 마지막 희망은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따사로운 겨울 볕에 진도 팽목항의 노란 리본들도 유난히도 밝게 나부꼈다. 설날인 19일 오후 다시 찾은 팽목항엔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찾아온 시민들로 발길이 붐볐다.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로 향하는 길엔 차례상 대신 실종자 9명분의 떡국이 올려진 ‘기다림의 밥상’이 마련됐다. 안산 단원고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고창석 교사, 일반인 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 이영숙씨를 위한 밥상이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세월호 참사 310일을 맞은 이날 처음으로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는 박선정씨(22)는 “지난해 사고가 난 후 계속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아빠의 고향이기도 해서 오게 됐는데 매번 오던 같은 바닷가지만 노란 리본이 있어서 그런지 더 적막하다”며 “자식과 가족을 잃은 분들의 마음은 안타깝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른 가족을 위해서라도 희망을 갖고 용기 내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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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 사진=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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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에 차려진 실종자 9명분의 떡국 밥상. 사진=강성원 기자

팽목항 입구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도 시민들의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박지원·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박홍률 목포시장 등도 이날 오후 분향을 마친 후 희생자·실종자 유가족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엔 희생자와 실종자 일곱 가족 15명 정도가 분향소 옆 컨테이너 숙소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분향소 방명록에 “잊지 않겠습니다. 인양은 우리의 의무입니다.”라는 글을 남긴 박지원 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서도 “팽목항은 봄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실종자 9가족은 찬 바다를 바라봅니다. 단원고 추모교실처럼 희생자 분향소의 사진들은 우리의 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인양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인양은 살아있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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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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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 ‘기다림의 의자’에 쓰인 추모 글들. 사진=강성원 기자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이날까지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양의 삼촌 김성훈씨는 “오늘 시민 수백 명이 분향소 찾아왔고 우리는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과 선체 인양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읍소하고 있다”며 “지난주 진도 도보 행진 목표 달성 후 유가족들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고 환자가 아닌 분이 없지만, 가족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는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유가족들에게 희망보다는 실망을 더 안겨준 언론에 대해서도 “우리는 언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히 아파하고 있다”며 “국민과 언론, 정치인이 바로 서면 이 나라가 바로 설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치인이 언론을 붙잡고 흔드니 국민도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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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 풍경. 사진=강성원 기자

컨테이너 숙소에서 만난 세월호 실종자 권재근씨(52·동생)씨와 권혁규군(7·조카)의 가족 권오복씨(60)는 “사고가 난 지 벌써 310일이 지났는데 박근혜 대통령부터가 의지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며 “우리는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 여기서 버티고 있고, 3월 초까지는 인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에서 특별법의 세부 내용을 조목조목 만들고 진상조사도 정확하게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후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가고 있다”며 “오히려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은 예산까지 삭감하는 등 특별조사위를 방해하고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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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설날 오후 진도 팽목항 풍경. 사진=강성원 기자

“하늘에서 찬란한 별이 되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대한민국을 지켜주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처벌을 원한다. 세월호는 살릴 수 있는 배였다.”

팽목항을 지키는 가족들과 수많은 시민의 간절한 새해 염원을 ‘그들’은 귀성길 뉴스를 통해서라도 들여다보고는 있을까. 그들이 부디 국민을 위해 귀를 열어 주기를, 그토록 잔인했던 진도 바다도 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