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적시켰냐가 아니라 왜 ‘숨겼냐’가 우리 질문”

[현장] ‘제적 처리 사태’ 이후 단원고 피해가족 다시 농성, “2년 동안 참아온 설움 폭발해”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제적을 시킬 거라곤 생각 못 한 것도 맞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한 마디라도 해줬어야지.”

지난 11일 오후 세월호 피해 유가족은 단원고를 찾은 경기도교육청·안산교육회복지원단 장학관, 단원고 정광윤 교장과 양동영 교감을 향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제적 사실을 알고 있었냐”, “그렇다면 왜 말을 안 했냐”고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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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11일 오후 단원고를 찾은 경기도교육청·안산교육회복지원단 장학관이 세월호 피해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세월호 피해 유가족은 지난 9일 이후로 단원고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 학생들의 제적 처리 사실이 확인되면서 책임자의 해명과 사과를 듣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행정절차에 대해 지나친 반응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가족은 ‘왜 제적시켰냐’보다 ‘왜 말하지 않았냐’는 데 더 분노했다.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단원고에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왔다고 밝혔다. ‘8반 준형아빠’ 장훈씨는 “학교도 사고에 책임이 있음에도 단원고를 건드리지 않는 건 불문율이었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었고 꿈을 키웠던 학교였기 때문”이라며 “얼마나 울분에 찼으면 학교까지 왔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유가족이 기억하는 단원고는 “아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지 못하게 하는 학교”였다. 단원고는 실제로 학생들에게 리본 착용을 금지한 바 있다. ‘4반 동혁엄마’ 김성실씨는 “위로 문자, 편지 하나 받은 적 없고 이후로 선생님을 뵐 수도 없었다. 수없이 많은 학교에 간담회를 하러 다녔지만 단원고는 한 번도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민언니’ 최윤아씨는 “학교가 참사 후 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주거나 배려한 것은 전혀 없다. 유가족이 수없이 집회를 해나가던 중에도 관심 한 번 가지지 않았다”며 “기억교실 청소도 유가족들이 대걸레 들고 돌아가면서 했다. 교실 리모델링, 교직원 싹 교체하는 것을 보면 세월호를 다 지우려는 것 같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학교가 참사 이후를 수습하는데 피해자 측에 진정성 있게 나서지 않은 데 대한 실망감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교내 갈등으로 불거진 ‘기억교실 이전’에 대해 장훈씨는 “추모공간 설립논의는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의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고 ‘동혁아빠’ 김영래씨는 “학교가 재학생 측 부모와 피해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중재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오히려 분열시키고 방관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런 이들에게 학교의 제적 처리가 준 배신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정부기관의 사실 은폐, 허위 진술, 그리고 책임전가에 맞서 싸워 온 이들에게 학교가 똑같은 모습을 답습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학교가 1월21일에 250명의 제적을 결정했는데 5개월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졸업식을 거부하고 미수습자를 기다리던 유족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라면서 “그러면서 학교는 가족과 지속적으로 만나 ‘기억교실 이전’ 협약을 이끌어냈다. 교실을 내보내기 위해서 가족을 기만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후 7시, 정 교장은 갈등을 풀기 위해 ‘제적 사태’ 이후 유족 앞에 처음 모습을 보였지만 농성장 내의 고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유족들에게 학교는 ‘허위진술’과 ‘책임전가’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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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윤 단원고 교장이 11일 오후 7시 농성중인 유가족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손가영 기자

농성장에선 “제적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느냐”, “제대로 해명하라”는 고성이 빗발쳤다. 이에 교장은 “3월에 부임해 제적과 관련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 “학교는 충돌없이 협약을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성실씨는 “어떻게 미안하단 얘기 한 마디가 없느냐”며 “피해 학생의 제적사실을 모를 리 없는 책임자가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를 회피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특히 전날 기억교실의 보존된 책걸상을 빼려던 재학생 부모와 피해 가족의 물리적 충돌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양 교감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격렬한 항의에 부딪혔다. 충돌의 주요 원인 제공자였던 장아무개 전 운영위원장과 안면이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말한 점과 기억교실 내 생존자 학생의 책상을 빼도 되냐 묻는 재학생 부모의 질문에 “빼도 된다”고 답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한 사실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양 교감이 답변을 하는 와중에 “단원고도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다 똑같다”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렸다.

김영오씨는 “보수언론이 유가족을 공격하기 딱 좋은 상황인 걸 안다. 다른 사람들도 유가족의 속내를 모르고 ‘떼쓰기’라 비판할 거 아니냐”면서 “기억교실 협약 이전은 우리가 미수습자를 기다려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학생들을 위해서 유가족이 눈물을 머금고 양보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적 사실을 숨긴 채 협약만 이끌어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해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 가족협의회는 피해 학생들의 학적 처리, 미수습자 수습 이후 기억교실 이전을 확인받기 전까지 농성을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때까지 유족들은 봄 방학으로 단원고 교정이 빈 15일까지 본관을 지킬 예정이고 이후엔 교실에 올라가 농성을 지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