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 투입에서 철수까지 52시간, 무슨 일이 있었나

[현장] 다이빙벨 사건 일지… 희망이 불신으로 바뀌었다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 투입돼 잠수까지 마쳤던 알파잠수기술공사의 다이빙벨이 지난 1일 자진 철수했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철수 직후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수색이 목적이었는데, 결과가 없었으니 결국 실패”라며 실종자 가족에게 사과했다. 또 이 대표는 “기존 해오던 작업보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여태 고생한 해경 등의 공을 가로채는 격”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항의했고 취재진도 황당해했다. 게다가 같은 날 오전 다이빙벨은 75분간의 잠수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철수 이후에도 “(해경 등에) 다이빙벨을 쓰려면 빌려서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다이빙벨의 효과를 주장하는 발언이었다. 다이빙벨 투입에서 철수까지 52시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디어오늘이 그 52시간의 현장을 기록했다.

4월29일 6:00am
진도 팽목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팽목항 한 쪽에서는 알파잠수공사 다이빙벨이 출항을 준비했다. 이날 출항에는 알파잠수 직원, 자원봉사 잠수사 그리고 취재진 15여명과 단원고 실종학생 학부모 2명이 동행했다. 이번 출항의 취재진 허용은 실종자 가족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님들이 현장에서 잘 검증해주세요. 우리는 아무도 못 믿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면서도 희망을 놓지 못했다. “저는 애초에 다이빙벨 투입을 반대했어요.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그래도 어쨌든 투입을 결정했기 때문에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실력 있는 사람(잠수사)가 들어가서… 우리 애가 아직 못 나왔거든요.” 아들을 물 속에 둔 이아무개씨가 말했다. 사고 13일째였다. 그는 이날 언딘과 해경의 수색 작업을 보기 위해 언딘 바지선으로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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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4월29일 12:00pm
비가 그쳤다. 다이빙벨도 ‘가동시험’ 준비를 마쳤다. “다이버, 다이버, 잘 들려요?” 이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잠수사들에게 무전을 보냈다. 잠수사 한 명이 다이빙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오케이’ 표시를 해보였다. 잠수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세 명의 잠수사를 태운 다이빙벨이 관매도 앞바다로 서서히 들어갔다. 가동시험이 이뤄진 관매도 앞바다는 사고해역에서 5km 떨어진 지점이다.

바지선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지선 한쪽에 위치한 두 개의 모니터 앞으로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이는 다이빙벨 내부와 잠수사가 가진 CCTV와 연결된 것이다. 이 대표는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잠수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할거야. 그 상태에서 다이버2가 벨에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으로 합니다”, “다이버, 형상이 될만한 걸 카메라로 비춰봐.”

10분 남짓이었지만 가동시험은 성공적이었다. “잠수함에 탄 기분이었어요.” 다이빙벨을 타고 물 밖으로 나온 김명기(36)씨가 말했다. 특수부대 UDT 동지회 간사인 그는 잠수 경력 15년차다. 그는 “조류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아요. 이 대표가 40~50분 잠수 가능하다고 했는데 가능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도 기자들에게 “이 정도라면 오늘 수색작업 투입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4월29일 2:00pm
“해경이 아주 협조를 잘해줬어.” 회의를 마친 이 대표가 바지선으로 돌아왔다. 이 대표는 “해경과 협의를 통해 선미 4층을 맡기로 했고, 언딘 바지선에 붙여 작업하기로 했다. 아직 언딘 바지선이 작업 중이라 인원(잠수사)이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배를 근처로 옮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해군 중령이 작업상황의 자세한 부분까지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상황은 쉽지 않아보였다. 무엇보다 잠수사가 부족했다. 앞서 25일 이 대표는 8명의 잠수사를 데리고 출항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잠수사는 3명이 전부였다. 장시간 작업에는 부족한 인원이다. “다 떠났는데 지금 와서 협조를 잘 해주면 뭐하냐”는 불만도 나왔다. 출항 소식을 들은 자원봉사 잠수사 두 명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때 언딘 바지선에서 시신 8구가 수습됐다. 해경은 이날 오후 일반인 1구, 학생으로 추정되는 8구의 시신이 5층 로비와 4층 선수 좌편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5층에서 나왔다는 말에 실종자 가족들이 술렁였다. 5층에는 아이들 방이 없었다. “2학년 8반 안아무개가 5층에서 나왔대. 물이 차오르니까 아이들이 위로 기어올라갔나봐…”

4월29일 6:00pm
드디어 알파와 언딘이 만났다. 알파 바지선이 언딘 바지선과의 접안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파 바지선이 이날 오전 팽목항을 떠난 지 12시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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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오후 다이빙벨을 실은 알파잠수공사 바지선이 언딘 바지선과 접안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4월29일 8:40pm
‘물때’가 돌아왔다. 6시간 마다 다가오는 물때는 바닷물살의 흐름이 바뀌는 시간으로 이때 바다가 가장 잔잔하다. 작업하기에 적절하다는 의미다. 알파와 언딘 바지선 모두 바빠지기 시작했다. 알파 바지선에서는 두 명의 잠수사가 1차 버팀줄 설치를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갔다. 버팀줄은 언딘 바지선에서 세월호 4층 선미 쪽 출입구로 연결돼야 한다.

버팀줄은 다이빙벨이 세월호 선체에 쉽게 진입하기 위한 장치다. 후에 다이빙벨은 이 버팀줄을 타고 선체로 내려가게 된다. 1차 버팀줄을 설치한 잠수사들은 취재진에게 “25m아래로 내려가 줄을 설치했다”며 “새벽 2시에 다시 한 번 들어가 두꺼운 줄로 단단하게 묶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 버팀줄이 성공하면 사실상 수색의 준비 작업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버팀줄 작업이 끝났을 때 쯤 문자가 울렸다. 실종자 가족이었다. “언딘 바지선에 있는 학부모인데요. 알파는 앙카(닻)없이 작업하네요. 보고 있는데 설치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앙카를 설치하지 않으면 (배가) 흔들려서 작업하기 어렵다고 하는데…입수 19분 만에 버팀줄 가고정 했다는 건 믿기 힘들어요.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요.” 희망이 불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4월30일 2:00am
사고해역의 아침은 일렀다. 하늘에는 노란 조명탄이 터졌고 오징어잡이 조명도 켜졌다. 대낮같이 환했다. 물때가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잠수사들은 바빠졌다. 언딘 바지선에는 총 6명의 잠수사가 물에 들어갔다. 해경 3명, 해군 2명, 언딘 1명. 이들은 4층 선수 좌현 객실에서 4명, 5층 로비에서 1명 등 총 5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알파 바지선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2시 30분께 두 명의 잠수사가 2차 버팀줄을 설치하기 위해 입수했지만 실패했다. 잠수사들은 “4층 선미에 묶을 자리가 없어, 3층 선미에 줄을 연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이빙벨이 수색해야 할 곳은 4층 선미다. 과제 하나가 더 남은 것이다. 3층 선미와 4층 선미를 추가로 연결하기. 그만큼 다이빙벨 투입 시간은 늦춰지게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애가 탔다.

“모두 반성해.” 이 대표가 잠수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잠수사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사고해역 투입은커녕 도면도 보지 못한 잠수사들이 첫날 작업에 성공한다는 건 어려워 보였다. 이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해경은 알파에 세월호 도면을 제공했다. “이제서야 이런 걸 주네.” 알파 바지선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4월30일 8:50am
하늘이 돕지 않았다. 6시간 만에 돌아오는 물때였지만 조류가 심했다. 알파와 언딘 모두 수색작업을 벌이지 못했다. 다음 물때는 오후 2시 20분이다.

4월30일 2:20pm
“분명 선미라고 했는데, 아무리 가도 끝단이 안 보여요.” 버팀줄 작업을 마치고 물에서 나온 잠수사가 말했다. 해경의 설명이 맞았다면 끝단이 보였어야 했다. 회의가 시작됐다. 해경 장비과장도 참가했다. 그는 해경과 알파 바지선 사이에서 여러 사안을 조율하고 있었다. 도면을 보면 장비과장이 말했다. “여기는 선미 중앙.”

이 대표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걸(도면) 주면서 끝단이라고 했다. 대체 몇 탕을 소모한거냐. 그러니 다이버가 들어가서 문을 찾으려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거야.” 엉뚱한 곳에 작업을 한 셈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해경 장비과장은 “왜 일부러 그러겠냐. 소통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애초 도면으로 설명을 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해경 경비안전국장이 이 대표를 언딘 바지선으로 안내를 했고, 언딘 바지선 관계자가 설명을 했던 것이다. 결국 해군 SSU 중령이 알파 바지선으로 넘어와 도면을 보며 다시 설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제와 선미 끝단에서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다이빙벨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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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알파잠수공사의 다이빙벨이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 투입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4월30일 3:40pm
노란 다이빙벨이 물 속에 잠겼다. 전날 가동시험 이후 처음 만나는 물이었다. 이 대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몇미터?” 잠수사는 다이빙벨 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펴보였다. 19. 모니터에 비춰지는 화면은 선명했고 통신 상태도 좋았다. “다이버가 마스크 쓰고 벨 밖에 나가서 엥카줄이랑 닿아있는지 봐주세요.” 이 대표가 지시를 내렸다.

마스크를 쓰는 잠수사의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다. 그때 불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잘 안 들어와요.” 바지선 위가 분주해졌다. “지금은 어때?” “안 들어와요.” 바지선에서 다이버로 연결된 공기주입호스가 터진 것. 이 대표는 “바지선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여러 선들이 꼬이다가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이빙벨은 그대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출항 33시간째였다.

5월 1일 3:20am
출항 45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기주입호스를 고친 다이빙벨이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선체를 확인했어요.” 잠수사가 말했다. 수심 23미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이 대표가 지시를 내렸다. “선체 진입하라.” 다이버 두 명이 벨에서 이탈해 선체를 향해 다가갔다. 다이버와 연결된 모니터에는 세월호 난간 기둥이 보였다.

“저건 세월호 난간이 맞네요.” 한 실종자 가족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이빙벨은 목욕탕 같은 조용한 곳에서 해야 효과가 있는 거예요. 여기서는 안 될 거예요. 저는 기대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했다. 언딘 바지선에 있던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모두 알파 바지선으로 건너와 초조한 마음으로 작업을 지켜봤다. 벨에 들어가지 않은 한 잠수사는 두 손을 모았다.

5월1일 5:05am
멀리서 해경 P-62정이 다가왔다.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을 태우러 온 것이다. 그런데 접안하는 과정에서 해경정 뒷부분이 알파 바지선에 부딪혔다. 해경 경비정 뒤로 하얀 물살이 일었다. 자칫하면 다이빙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보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이버들은 작업을 마치고 감압중이었다.

알파잠수 선원들이 해경에 항의했고, 이 대표도 언성을 높였다. “아니 왜 그러지, 왜 배를 갖다 박지. 옆에 칠라고 그러는 거 아냐.” 불신이 쌓여갔다. 해경 관계자는 “조류를 잘못 알고 실수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춘재 해경경비안전국장도 4일 “그날 밤 파도가 높아 경비정이 계류차 접근하다 순간적으로 높은 파도에 밀린 것뿐인데, 이를 고의로 밀어붙이면 뭐라 하겠느냐”고 말했다.

5월1일 5:10am
잠수사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객실 진입에는 실패했다. 벨에 투입됐던 허철(50) 잠수사는 “가이드라인과 밧줄 등이 엉켜있어 객실 진입은 어려웠다. 4시 8분쯤에 후카(수상에서 수중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잠수 장비. 속칭 머구리) 호스가 주변의 줄과 엉켜 4시 15분께 다이빙벨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2차로 벨을 이탈해 몇 개의 줄을 끊고 이날 작업을 마무리했다.

45분, 75분, 105분. 이 날 다이빙벨의 수색시간, 해저 체류 시간, 총 입수 시간이다. 총 입수 시간에는 다이빙벨의 이동시간, 감압시간이 포함됐다. 이 대표와 잠수사들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이해가 안 갔다. “성공적이라면서 왜 객실에 진입하지 않은 겁니까. 성공적이라면 시신을 한 구라도 데리고 왔어야죠.” 이 대표는 “상황을 봐서 벨을 재투입할 것”이라 답했다.

문제는 잠수사였다. 투입할 잠수사가 없었다. 허 잠수사는 “다이빙벨이 2시간 작업을 하고 나왔으면 다른 다이버들이 곧장 투입돼야 작업에 속도가 붙는다. 소속을 떠나서 총력을 다해야 한다. 좋은 장비(다이빙벨)는 같이 쓰고 인력도 공유해야 한다. 해경 측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자원봉사를 끝으로 진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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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1일 오전 다이빙벨 속의 잠수사들과 통신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5월1일 8:00am
이제 취재진은 알파 바지선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이빙벨이 투입에 ‘성공’했으니 곧 재투입될 것이라 생각했다. 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바지선에는 고발뉴스, 국민TV, 미디어오늘, 민중의소리, 팩트TV, 1인 미디어 김종환씨가 있었다. 출발 직전 기자가 이 대표에게 “오늘 다시 투입할거냐”고 묻자 이 대표는 “상황을 봐서 투입할 것이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5월1일 9: 40am
전화가 왔다. 실종자 가족이었다. “이종인 대표가 자진해서 철수한다고 합니다. 기자님 혹시 현장에서 들은 거 있나요?” 의외였다. “군경에서 잠수사를 지원해준다고 했는데도 지휘통제 부분에서 마찰이 발생한다며 이 대표가 거절했다고 하네요. 그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화가 난 목소리였다.

희망은 사라졌고 불신만 남았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에 다이빙벨 설치에 이틀이 소요됐어요. 사고해역에 와서 준비할 것이 아니라 즉시 투입이 가능하도록 준비된 상태로 왔어야죠. 차라리 그 시간에 다이버들을 투입해 시신 몇 구라도 더 건졌으면 좋았을걸. 우리 아이가 아직 그곳에 있단 말입니다.” 진도체육관으로 돌아온 학부모는 씁쓸하게 말했다.

다이빙벨 투입에서 철수까지 52시간, 세월호 사고 해역을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다. 불신이었다. 실종자 가족의 조급함은 알파잠수가 처한 구조적인 여건을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잠수사 부족, 벨 투입에 필요한 준비과정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투입이 됐으면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외의 모든 말은 ‘변명’처럼 들렸다.

알파잠수와 해경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협조적’이라 평가했던 해경에 대한 믿음은 24시간 만에 깨졌다. 해경측은 실수라고 했지만 이 대표는 고의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