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선 KBS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렵다”

KBS 38~40기 기자 40명, 세월호 보도 ‘반성문’ 올리고 보도국 토론회 요구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세월호참사 실종자‧희생자 가족이 외면한 국가재난주관방송 KBS 보도국 내부에서 자사보도에 반성하는 기자들의 글이 일제히 올라왔다. 이들은 취재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비판여론을 담아내지 못한 KBS는 공영방송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KBS 기자들조차 KBS의 정부편향 보도를 두고 볼 수 없어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1~3년차에 해당하는 38~40기 소속 40여명의 KBS 기자들은 7일 오전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반성합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10건의 글을 올렸다. 이들은 KBS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하며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침몰하는 KBS저널리즘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해당 글에는 세월호 참사현장에서 취재원에게 외면당한 기자들의 반성과 울분이 담겨 있었다. KBS ㄱ기자는 “며칠 전 라이브 중계를 위해 광화문에서 2시간 정도 대기하는데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욕을 했다. ‘KBS X새끼들’ ‘KBS 정말 싫어’…. 죄송하다. 저 또한 진도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한 명이었기에”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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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KBS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라온 38~40기 기자들의 내부비판 글.

ㄴ기자는 “5월 4일 대통령은 사고 이후 두번째로 진도를 방문했다. 팽목항에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들을 우리 뉴스는 다루지 않았다. 육성이 아닌 CG로 처리된 대통령의 위로와 당부의 말씀만 있었을 뿐”이라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절규는 사라졌고 대통령께 부탁을 하고 대통령이 위로와 당부를 하는 모습은 너무나 잘 짜인 연출된 모습 같아 보였다”고 개탄했다. 이어 “왜 우리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ㄷ기자는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현장이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면서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다”고 적었다. 이어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 아닌가”라고 되물은 뒤 “조간 우라까이(베끼기)가 KBS의 존재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ㄹ기자는 “얘기 안 되는 내용도 얘기되는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얻어낸 결과물을 가지고 자책한 것도 여러 번, 손에 쥔 카메라가 요즘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며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는 내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무게가 더해져 마음 편히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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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KBS본관앞에서 열린 KBS규탄 촛불집회 모습. ⓒ이치열 기자

ㅁ기자는 “오늘 하루도 뭐 하나 말 거 없나만 생각하는 하루살이가 됐다. 시야는 좁아지고 고민은 얄팍해졌다”고 반성한 뒤 “많은 기자들이 일주일 넘게 진도에 머물렀지만 그 누구도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숨진 학생의 휴대폰에서 복원한 영상을 타사(JTBC)에 넘긴 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ㅂ기자는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 리포트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아이템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 했다”고 밝혔다.

ㅅ기자는 “비판 여론이 들끓는데도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와 취재를 지시 받았다.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분향객을 잡아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멘트를 따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보여 줄 수 있었던 최선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개탄했다. 이 기자는 “관에서 나오는 정보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식의 보도가 아니라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키워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역할을 KBS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타사에 비해 압도적인 인력과 기술력을 갖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한 것일까”라고 물으며 “팽목항에선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렵다”고 적었다.

ㅇ기자는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위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던 박 대통령의 경솔한 언행을 지적하는 것도 (KBS에서)본 적이 없다. 박 대통령이 일반 조문객을 마치 유가족인 척 위로하는 청와대발 촌극은 언급조차 없었다. 덕분에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다. 순간순간 비겁함이 모여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 아닌가. 반성한다”고 적었다. 이 기자는 간부들을 향해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라. 그 편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7일 오전에 열린 국장주재 편집회의는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길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편집회의에 참석한 조일수 기자협회장을 중심으로 기자협회차원에서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노조 KBS본부 또한 관련 성명을 낼 예정이다. 미디어오늘은 기자들의 토론회 요구에 대한 답을 듣고자 김시곤 보도국장과 통화했으나 “홍보실에 문의하라”는 답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