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아이 영정, 연신 닦아낸 삭발의 어머니

[현장] 세월호 유가족 1박 2일 도보행진 “악마의 시행령 폐기해야”…6일에는 해수부 항의방문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던 5일 오후, 상복 차림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가슴에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안은 채였다. 영정사진 아래에는 노란 띠가 둘려졌다. ‘세월호 인양’ ‘시행령 폐기’ ‘진상규명’ 등의 글자가 적혔다. 혹여나 비에 젖을까 비닐로 싸여진 영정들이 보였다. 삭발을 한 한 엄마는 영정 위로 떨어진 빗방울을 연신 닦아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250여명이 지난 4일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시작된 1박 2일의 도보행진을 끝내고 5일 오후 5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5000여명의 시민들도 함께 했다.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서며 “책임자를 처벌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등을 외쳤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좋지 않은 날씨, 일요일 저녁에 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누구누구의 아빠·엄마’로 자신을 소개했다. “2학년 7반 찬호아빠”로 자신을 소개한 전명선 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실종자 수습은 대통령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인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이 광장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저희가, 마지막 아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날 가족 중에는 아직 상복을 입지 ‘못한’ 이들도 보였다. 실종자 가족들이다.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아버지 조남성씨는 영정 대신 “355일 동안 바다에 있는 우리 은화를 찾아주세요”라는 피켓을 높이 들었다.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학생 아버지 허흥환씨는 “아직 세월호 속에는 9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9명의 가족들이 있습니다”라며 “국민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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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유가족 250여명이 지난 4일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시작된 1박 2일의 도보행진을 끝내고 5일 오후 5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촛불집회를 열었다. 사진=이하늬

가족들이 도보행진에 나선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번에는 지난 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 때문이다. 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이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 시킨다고 주장하며 완전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가족뿐 아니라 이석태 특위 위원장까지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애초 특위가 요구했던 것보다 예산과 인력이 축소됐을 뿐 아니라 공무원 파견 인력 중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가장 많기(9명) 때문이다.

박진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운영위원장은 “해수부를 조사해야 하는데 해수부 직원을 파견하게 어떻게 믿겠냐. 그런 시행령”이라며 “이제 1년이면 오롯이 슬픔만 가지고 위로받고 치유받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나. 1년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 너무나 희망적인 메시지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 운영위원장도 지난 4일 유가족들의 삭발에 동참했다. 그는 “제가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동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면 몇 가지를 수정하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수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 폐기다. 그러나 해수부는 의견 수렴을 통해 수정을 하겠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수백 번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더 이상은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 시행령을 ‘쓰레기 시행령’ ‘악마의 시행령’으로 불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마주보고 서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시민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가족들은 시민들이 함께 해준 것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가족협의회를 설명했다. 서로 마주한 가족들과 시민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를 끝으로 이 날 집회는 별 충돌 없이 마무리 됐다.

한편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은 오는 9일 차관회의를 거쳐 14일 국무회의에 보고된다. 이때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시행령이 발효되고 세월호 특위는 이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이에 유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이 폐기될 수 있게 오는 11일에는 5000명이 아니라 5만 명, 50만 명이 모여달라”고 호소했다. 또 유가족은 오는 6일에도 세종시에 위치한 해수부를 찾아가 시행령 폐기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