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한 세월호 생존자, 입소 전날까지 날마다 울었다

[인터뷰] 존엄과안전위원회 평등팀 최현모, ‘비단원고’ 피해자들…참사의 또 다른 이야기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누구시죠?”
“일반인 유가족입니다”
“1반이요? 저쪽으로 가세요.”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일반인 유족이 겪은 웃지 못 할 에피소드다. 참사 직후 적십자 등 여러 단체가 나서서 안산 단원고 학생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텐트를 설치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인’ 희생자라고 분류하고 있는 ‘비단원고’ 탑승자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텐트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우리사회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 476여명(사망 295명, 실종 9명, 생존 172명)을 바라보는 시선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피해자들을 만나오고 있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평등팀의 최현모씨를 만나 보통 ‘일반인’ 희생자라고 불리고 있는 ‘비단원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씨는 “생존자 172명에게는 172개의 이야기가 있고, 사망·실종자 304명에게는 304개의 이야기가 있다”며 “어느 하나의 이야기로 세월호를 이해하지 말고 애도의 평등, 추모의 평등을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최씨는 지난해부터 들은 비단원고 탑승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했다.

화물기사

“세월호에는 화물 기사들이 30여명 타고 있었다. 세월호는 여객을 위한 배가 아니라 화물로 돈을 버는 배였기 때문에 화물기사들은 일반 승객들과 다른 방을 사용했다. 한달에 10번 이상 배를 타는 화물기사들은 배 구조를 잘 알고 있었고, 사고 당시 가장 나중에 물에 잠긴 선미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살아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죽음 앞에서 다급하게 나온 그들을 ‘애들을 밀치고 나온 비정한 어른’으로 바라봤다.

화물차 한 대는 적어도 1억이 넘는다. 당장 생활비도 없이 화물차 대출금을 200여만원씩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정부지원책은 화물 일을 하다가 죽을뻔한 사람들에게 다시 화물차를 사서 일하는 조건으로 대출해주겠다는 것 등이었다. 피해당사자들은 정부의 어이없는 대책에 분노했다. 동료를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정부는 1년 치료비를 대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한다.”

입대한 생존자

“스무 살이 갓 지난 4명의 청년이 배를 탔다. 군 입대 영장을 받아놓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이 중 2명은 사망했고, 2명은 살아나왔다. 친구를 잃고 살아나온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치료와 위로가 아닌 징집영장이었다. 이들은 트라우마를 안고 세월호 참사 이후 입대해 현재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도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희생된 이들의 부모를 알게 됐는데 ‘군대 가기 전까지 매일 울었다’고 하더라.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친구를 잃은 청년이 군대 안에서 감당할 수 있을까?”

바람 거센 팽목항

▲지난 12월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길에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가 문화제를 열고 세월호를 조속히 인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도 어민

“삶의 터전이 참사지역이 된 진도 어민의 고통은 조업이 중단되고 생계에 타격을 입는데 그치지 않는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계속되었으나 이들의 건강과 심리적 고통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구조수색 작업에서 직접 희생자의 시신을 보게 된 이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올해 1월 치료에 관련한 정부지원이 중단된 상황이다. 진도 어민들에 대한 피해의 통합적 파악과 지원이 절실하다.”

이주민 희생자 유족

“시신으로 발견된 한윤지(29)씨의 남편 권재근(51)씨와 아들 권혁규(6)군은 모두 실종 상태다. 베트남에서 귀화한 한씨의 유일한 직계 가족은 아버지 뿐인데 외국인이기 때문에 통역 등의 문제로 지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사고를 당한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지원이 정부에 의해 정해진 일정한 조건에 따라 그 조건에 맞는 사람에게만 지원을 하는 것이 정부의 태도다.”

최씨는 “지금까지 들은 얘기도 충격적이지만 정말 감춰진 수많은 얘기들이 있다”며 “이 얘기들을 다 기록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말했다. 피해자 각각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애도의 평등과 추모의 평등의 의미도 있지만 사고 당일과 사후 수습과정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정부가 ‘다 안다는 듯한 태도, 다 알아서 해줄 것 같이 하는 태도’에 대해 분노한다. “교육부는 추모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런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만 들어갔다. 그래서 일반인 희생자 분들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교육부는 학생들은 교육차원에서 갔고 다른 사람들은 놀러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최씨는 정부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현재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 지원을 끊자 시민들이 왜 가난을 증명하게 만드느냐며 분노하는 것처럼 세월호 피해자들도 자신의 피해와 가난을 입증해야만 했다. “정부는 안산에다가 분향소를 차리고 종합지원대책반을 설치했다. 하지만 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안내가 되지 않았고, 피해자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지만 지원을 위한 콘트롤 타워가 부재했다. 지자체가 미리 피해자 인원을 파악해서 안내해주면 좋을텐데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피해자들이 물어물어 지원을 신청해야만 했다. 그러면 이런 저런 조건을 따져 지원대상여부를 결정했다. 구걸하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최씨는 결국 그냥 자신의 돈으로 치료를 받고 국가에 따로 지원을 신청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우리가)접촉조차 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아직 많은데 정부는 배보상 얘기를 꺼내고 언론에서는 세월호 참사는 얼마쯤 받을 것 같다며 다른 사고들과 비교하고 있다”며 “돈 얘기로 공격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시행령안은 폐기할 수 없다, 치료비는 1년만 보장할거다, 국가가 돈을 줄테니 받아라 국가는 구상권을 보험사 등에 행사하겠다, 이런 입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알아서 하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며 “국가는 결국 모든 책임에서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피해자부터 모두 파악해서 개별면담을 진행했어야 했다. 그래서 적어도 생계비와 치료비에 대해서는 부족함 없이 지원했어야 했다. 지원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피해자를 쪼개고 이런저런 조건을 따졌다. 언론에서는 교묘하게 의인에 대한 이야기만 조명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의인들이 고마운 것과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도 함께 이야기했어야 했다. 가족과 동료를 잃은 사람들은 아직도 악몽을 꾸는데….”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지만 정부가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있다. 피해자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병원으로부터 치료비 독촉을 받는 부상자들, 주방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따라 한번 배를 탔다가 선원인지 승객인지 분류도 제대로 되지 않아 선사와 해수부에 모두 외면 받던 희생자,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시신을 다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민간 잠수사들, 자식이 죽은 이유를 알고자 삭발까지 감행한 단원고 학부모들, 그리고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국가가 어디까지 피해자들을 내몰지 알 수 없다. 모욕과 무시를 당해온 피해자들이 우리사회에 소리쳐 묻고 있다. 이 나라 정부가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진실로 가는 길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