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 언론중재 ‘폭탄’, 1차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

지난해 언론중재위 세월호 관련 보도 조정 건수 1만6554건… 직접 취재하지 않은 정보 기사화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지난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된 조정건수는 1만9048건으로 2013년 2433건에 비해 무려 1만6615건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조정청구현황 평균에 비춰보면 평균보다 7~8배 높은 조정건수였다. 그리고 1만 9048건 중 세월호 참사 관련 청구건수는 1만6554건으로 전체의 86.9%를 차지했고, 이 중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및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유족 측 청구건수가 1만6117건(97.4%)이었다.

구원파 및 유병언 유족 측은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200여개 매체를 대상으로 정정보도 1만1564건 및 손해배상청구 4934건을 접수했으나 대부분이 정정 및 반론보도 게재로 종결됐다. 실제 손해배상금 지급으로 분쟁이 종결된 사안은 없었다. 처리결과를 보면 정정 및 반론보도에 의한 심리 전 취하가 14,566건으로 88%를 차지했다. 기사를 쉽게 썼던 언론사일수록, 정정보도 또한 쉽게 이뤄졌다.

김동규 언론중재위원회 서울제8중재부 중재위원(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하는 계간 <언론중재> 봄 호에 실은 기고글을 통해 “세월호 사고 보도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언론조정 대상이었으며, 언론중재위원회는 물론 언론사도 사상 초유의 경험을 했다”며 “막대한 규모의 조정폭탄에 대한 1차 책임은 언론사들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원파 및 유병언 유족 측은 △유병언이 세월호 실소유주다 △유병언이 구원파를 설립했다 △금수원이 유병언의 소유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청해진 해운 직원 상당수가 구원파다 △구원파가 오대양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등 보도에 대해 조정을 신청했다. 김동규 언론중재위원은 “많은 언론사들이 직접 취재하지 않은 정보를 기사화해 마구잡이식으로 내보냈기 때문에 많은 경우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같은 신청인 측 요구대로 정정 및 반론보도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악의적인 명예훼손 기사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의 친부인 A씨가 오래 전 이혼한 뒤 자식과 연락을 끊고 지내오다 사고 후 돈 때문에 나타났다는 보도였다. 보도에는 신청인이 이혼 후 3년 간 생활비를 지급한 이후 양육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다가 딸이 사망하자 보험금 5천만 원 가운데 절반을 받아갔다는 내용도 있었다.

A씨는 2014년 2월까지도 양육비를 여러 차례 전달했고, 딸과 가족모임 등 여행에도 동참한 사실이 있다며 해당 보도를 한 10개 매체에 정정보도 및 상징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조정심리 결과 대부분의 매체가 정정 보도문을 게재했다. 김동규 언론중재위원은 “언론이 공익이나 알 권리라는 이름 아래 보도한 많은 내용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공익과 알 권리의 대상이었는지 언론계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종편채널이 유병언 전 회장의 해외 도피 조력자로 언급했던 B씨는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원했으나 해당 방송사가 조정에 응할 의사가 없자 B씨의 실명과 초상을 공개한 3개 매체 소속 기자들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1심판결에선 기사내용에 진실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사삭제 및 정정보도, 총 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선고하며 B씨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건은 한 종교단체가 수많은 언론사를 상대로 무더기 제소를 진행하며 언론중재위라는 분쟁 조정 기구를 통로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조정제도의 남용과 오용을 구분하는 보완책도 필요해 보인다. 김동규 언론중재위원은 “언론사는 구원파의 방대한 조정신청으로 취재 업무에 어려움을 겪어 언론자유의 침해를 받았고 향후 기사 작성에서 위축효과가 발생한다는 의견을 자주 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언론사가 ‘언론자유 침해’를 주장하기에 앞서 자사보도를 성찰했는지 묻고 싶다.

언론중재위의 유례없는 조정건수는 ‘베끼기’보도관행의 현실을 드러낸다. 취재만 했더라면, 반론만 들었더라면 천편일률적인 오보가 수백 건씩 쏟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언론의 기본인 팩트 체크를 무시하지만 않았더라면, 당장의 온라인 트래픽 대신 사건의 무거움을 먼저 받아들였다면 오보참사도 막을 수 있었다. 언론중재위의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조정건수 1만6554건은 ‘기레기’의 규모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수치다. 언론은 이 수치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