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둬도 아픈 사람들, 왜 상처를 들쑤시는가”

[인터뷰]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유해정씨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마이크를 잡은 지 5분이 채 되지 않은 실종자 허다윤 양 엄마 박은미씨가 쓰러졌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유해정씨(40)는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을 얘기하기 때문에 잠깐만 얘기해도 진이 다 빠진다”며 “말 그대로 심신이 허약해졌다는 게 딱 맞다”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는 정신과 질환 중 유일하게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병인 내인성 질환이 아닌 외인성 질환이다.

트라우마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전쟁 중에 방패가 뚫릴 만큼 강력한 외부 자극이 만들어낸 마음의 상처라는 의미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 따르면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과 다르다. 물리적인 시간은 지나가지만 심리적으로는 끔찍한 현장에서 모든 것이 멈춘 채 계속 언저리에서 사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오늘이 364번째 4월 16일이다’라고 말하는 게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트라우마는 아파하는 만큼 치유되고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번져간다. 지난해 6월부터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과 동고동락했던 기록을 담은 작가기록단 유해정씨(40)를 만나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대해 들었다.

유씨는 현장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인터뷰해 엮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집필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밀양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밀양을 살다’, 탈시설 장애인을 다룬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마’ 등을 기록해왔다. 유씨가 다양한 인권현장들을 기록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트라우마를 치유할 시간과 공간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 내리는 단원고 희생 학생 안치 하늘공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안치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하늘공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밀양의 경우, 처음에 송전탑이 들어온다고 할 때는 땅을 얼마나 빼앗기고 보상금을 얼마나 받는지를 두고 싸우게 된다. 하지만 8~9년쯤 지났을 때 보니 그때는 밀양 할매들이 땅을 빼앗기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 한해 열심히 일해서 한마지기 사서 모은 땅이다. 땅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땅을 빼앗기는 것은 삶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세월호 피해자에게 그런 시간을 허락했나?”

피해자들은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다. “연인이랑 이별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붙잡는 것은 당연하다. 뭘 해줬는지, 작별인사를 제대로 했는지, 아쉬운 건 없는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유씨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45일이 되면 눈을 마주치고 100일이 되면 목을 가누고 1살이 되면 두발을 딛고 세상을 걷는다. 1년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새로운 생명을 만나 걷게 되는 시간이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성장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씨에 따르면 여름 내내 거리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던 유족들은 특별법이 통과된 가을부터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휴식이라기보다는 그간 신경쓰지 못했던 가정을 챙기기 위한 시간이다. 하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 다시 피해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나 선체 인양을 지연시키고, 시행령을 발표한 시기다. 유씨는 “정부가 희망을 품었던 피해자들을 ‘벌집 쑤셔놓 듯이’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마음속으로는 지지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 생존 화물기사 피해자 등이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서게 됐다. 유씨는 “오죽하면 이들이 나왔겠느냐”며 “실종자가족들은 ‘가족을 꺼내지 못했는데 무슨 낯으로 인터뷰냐’며 노출을 꺼려했는데 아픔을 감내하고 나온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아픔은 심리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유씨는 “사회적 비극으로 만들어진 아픔이라면 왜 비극이 발생했는지를 알고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 사회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트라우마를 정신과 의사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상담치료만 받는 것은 결이 맞지 않다고 해야하나. 극심한 고통에 일시적인 치료는 필요하지만 결국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혜신 박사도 자신의 저서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서는 근원적 요소인 외부요인에 대한 명명백백한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며 “거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진원지에 대한 규명 없이 개인 내면만 치유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유씨는 얼마 전 용산참사 유가족을 만났다.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게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사회적 고립감’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유족들과 친했던 사람들조차 ‘설마 경찰이 그랬겠어’, ‘설마 악의를 가지고 했겠어’와 같은 말을 하다가 ‘이제 그만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면 유족들은 더 이상 그들을 만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진상규명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했을 때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을 정지시켜 충분히 아파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는 이들의 얘기를 계속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