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데스크’ 안 바뀌면 ‘기레기’ 못 벗어난다”

[토론회] 저널리즘의 추락, “재난보도, 재교육·준칙 제정만으로 한계 있어”

금준경 기자 | teenkjk@naver.com

세월호 참사 때 기자들은 기레기로 불렸다. 언론은 ‘대형오보’를 냈다. 유가족을 배려하지 못한 선정적 취재가 줄을 이었다. 새로운 정보를 남들보다 빨리 전해야 한다는 보도경쟁이 만든 결과다. 방송기자연합회가 13일 연 ‘재난방송보도를 위한 보도국 안에서의 실천과제’ 토론회에서 쓴 소리가 쏟아졌다.

참사 당시 현장 기자들은 어땠을까. 고명석 국민안전처 대변인(참사 당시 세월호 범대본 대변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수습된 시신의 현황을 칠판에 적었다. 신원불명일 경우 인상착의를 적었다. 유가족들을 위해서다. 그런데 언론이 이를 보고 앞서갔다. 인상착의만 보고 ‘단원고 학생’이라고 단정하는 식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시신이 수습될 때도 기자들이 몰려든다. 정도를 지키려는 기자도 물론 있다. 그런데 다들 몰리는 상황에서 눈치가 보여 결국 따라가게 된다고 하더라.”

오늘날 KBS등 언론은 기자를 재교육하고, 재난보도준칙 제정하는 방향으로 보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엄경철 KBS재난방송기획팀장은 “재난보도준칙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 보도의 문제점은 재난보도 준칙이 없어서 벌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사 현장을 취재했던 장운석 SBS A&T 영상취재기자는 “신속성보다 정확성이 재난보도의 방향이라는 거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우선인 현장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취재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사 ‘윗선’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언론사 간부급들은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엄경철 팀장은 “재난보도 준칙마저도 KBS내부에서 간부들이 제안하지 않았다. 준칙을 만드는 작업 역시 조직의 핵심이 아닌 바깥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재난방송 담당자가 재난상황에서 보도를 담당하지 않는 현실은 우리 재난보도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엄경철 팀장에게 “재난상황에서 보도를 관할할 권한이 있느냐”고 물었다. 엄경철 팀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강형철 교수는 “결국 데스크가 재난보도를 맡는 게 문제”라며 “기존의 전문성 부족하고, 권위주의적인, 현장 이해도가 낮은 데스크 말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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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확인하고 앰뷸런스로 향하는 유가족을 밀착취재하는 카메라들  사진=이치열 기자

관건은 ‘데스크급’의 변화다. 패널들은 지상파 방송이라도 데스크급 협의체를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장운석 기자는 “언론사 개별의 노력으로는 보도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면서 “언론사별로 재난보도를 총괄하는 콘트롤타워를 구성해야 한다. 모든 언론사가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어도 지상파방송이라도 우선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보도선진국인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사례로 꼽힌다. 일본 역시 처음부터 ‘좋은 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언론도 1995년 지진 때 유가족들에게 지나치게 접근해 선정적인 보도를 했고,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계형성을 중시한다. 중요한 건 항상 개선점을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츠카모토 소이치 NHK 서울지국장의 말이다. 개선된 사항은 이 뿐이 아니다. NHK는 재난보도시스템을 상시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NHK가 매일 새벽1시 재난보도 훈련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문성 또한 일본 재난보도의 특징이다. 츠카모토 지국장은 “후쿠시마 사태 당시 정부는 위험하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NHK는 전문성을 갖춘 기자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대응요령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데스크의 예단이 아닌 전문기자의 견해가 보도에 반영됐기 때문에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 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참사 당시의 재난보도 못지 않게 참사 이후 일상적인 언론보도가 또 다른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보도는 재난보도의 특수성에만 기인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세월호에 대한 어뷰징이 일어나고 있다. 프레임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고, 선정적 보도가 이어진다. 변화한 게 없다.” 강형철 교수의 말이다.

현장에서 참사를 취재했던 박영훈 목포MBC 기자는 참사 후 1년 동안 언론보도를 종합적으로 비판했다. “지금 언론은 세월호참사 첫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세월호를 구하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경비정의 모습처럼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 채 빙빙돌고 있다.” 그는 △참사 초기 오보 △정부 발표 받아쓰기 보도 △유병언 행정쫓기식 보도 △세월호 피로감 호소 보도 △유가족 폄훼 보도 △시행령 논란 침묵 △인양에 부정적 여론형성 보도 △대대적인 배보상금 보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날 패널들은 공영방송인 KBS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재난방송주관 방송사이자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청률이 높고 신뢰도가 높은 KBS의 논조가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KBS가 소유구조나 외압 등의 외부적인 탓을 하는 것 보다는 기자들이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도록 우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철 교수는 “KBS기자는 다른 방송기자와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다른 보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가 편성되는 KBS1은 상업광고를 편성하지 않는 완전한 공영방송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보도는 민영방송의 뉴스보도와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세월호참사 당시 보도를 보면 KBS도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헬기, 잠수부, 구조정이 투입됐다는 과장된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썼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연합뉴스를 비롯한 언론들이 현장상황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사상 최대규모의 구조작전이 벌이지고 있다”는 구조당국의 발표를 여과 없이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