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던 고등학생에게 경찰이 “노란 리본 떼라”

식별표 없이 과잉진압에 불심검문까지… 경찰 불법행위, 경찰이 수사할 수 있나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절차와 요건을 지키지 않은 국가권력은 깡패와 다를 바가 없다.”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지난 18일 ‘세월호 1주기 추모 범국민대회’에서의 경찰 대응에 대해 소송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대응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가족이 경찰 진압 등에 대해 법적 대응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갈등의 시작은 경찰의 차벽 설치였다.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오전 10시까지는 버스 한 대 정도 공간이 남아있어 이동이 가능했지만 11시쯤 경찰은 그것마저 막아버렸다”며 “차벽으로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버리니 시민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차 위로 올라가서 외칠 수밖에”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15분께 김씨는 경찰 차 위에서 연행됐다.

 

 

▲ 세월호 침몰 참사 1주기 앞둔 지난 17일 새벽부터 광화문 현판 아래에서 노숙 농성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18일 오후 경찰차벽 위에서 피켓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강제진압 연행되고 있다.ⓒ민중의소리.

▲ 세월호 침몰 참사 1주기 앞둔 지난 17일 새벽부터 광화문 현판 아래에서 노숙 농성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18일 오후 경찰차벽 위에서 피켓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강제진압 연행되고 있다.ⓒ민중의소리.

 

 

경찰, 차벽 설치 위한 계획서 들통

같은 시간 인근 서울 시청광장에서는 각종 집회와 행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은호(26)씨는 “집회 도중 사회자가 유가족 연행 소식을 전했고 문화제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분위기가 긴박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유가족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으로 이동했지만 쉽지 않았다. 경찰이 차량 470여대를 동원해 주요 도로를 막았고 겹겹이 저지선을 쳤기 때문이다.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집회 도중에 갑작스럽게 도로를 뛰어나와서 청와대 쪽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행동 이후 설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가족이 입수한 경찰 내부 문건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4·18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문화제 차벽 및 안전펜스 운용’ 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477대의 차량과 101개의 안전펜스를 이용해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는 계획이 나와 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은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 등을 검토중이다. 만약 이번에도 차벽 설치가 위헌으로 판단된다면 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의 차벽 설치는 두 번째 위헌 판결을 받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경찰 차벽 설치를 위헌으로 판단하며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 범국민대회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의 차벽 설치 계획 내부 문건. 사진=4.16가족협의회 제공

▲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 범국민대회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의 차벽 설치 계획 내부 문건. 사진=4.16가족협의회 제공

 

 

“안경 벗긴 다음, 눈에 캡사이신 문질러”

이 과정에서 80여명의 시민이 연행됐고 유가족 21명이 연행됐다. 문제는 연행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이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 정예진 학생의 어머니 박유신씨는 경찰차의 주차를 막다가 연행됐다. 그는 “몇 명인지도 모를 여경들이 와서 팔을 뒤로 꺾었고 ‘이 여자 다리 잡아’ 라는 명령, 그리고 두 다리를 잡혀 끌려 갔다”고 당시 상황을 발생했다.

2학년 10반 고 이은별 학생 학생 이모 길옥보씨는 잠시 정신을 잃었지만 제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 했다. 경찰 차벽 때문에 응급차가 광화문 광장까지 들어오지 못 한 것이다. 또 경찰이 한 희생 학생 아버지의 안경을 벗긴 다음, 캡사이신을 바른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영오씨는 “시민들이 보지 않을 때 경찰은 우리를 죄인 취급한다”고 말했다.

인권침해감시단(감시단) 보고에 따르면 연행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었다. 또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여성의 웃옷을 옆구리까지 들어 올리는 성추행도 발생했으며 남성 경찰이 여성 참가자를 연행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여성 경찰이 여성을 연행해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난다. 개개인이 아닌 방송으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기도 했다. 경찰은 연행자 중 권영국 민변 변호사를 비롯한 5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경찰에 가로막혔다. ⓒ장슬기 기자

▲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경찰에 가로막혔다. ⓒ장슬기 기자

 

 

“어디 가냐… 기자라면 죄송하다”

인권침해적인 상황은 집회 참가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날 광화문에서 안국역 쪽으로 이동하던 고등학생 임아무개(18)씨는 소지품과 신분증 검사를 요구받았다. 임씨는 21일 통화해서 “저녁 자습을 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경찰이 불러세웠다”며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나가는데 저만 붙잡는 게 이상해서 ‘왜 잡으셨어요’라고 물으니 노란배지 때문에 잡았다고 답했다”라고 임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씨에 따르면 이후 상관으로 보이는 경찰 3~4명이 도착했고 이들은 임씨가 고등학생이라고 하자 임씨에게 소지품과 신분증 등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임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앞에도 경찰이 있으니 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너무 기분 나쁘게는 생각하지 마시고. 그거(세월호 추모 배지) 떼고 가시는 게 어떻겠냐.” 임씨는 “불심검문을 거부할 수 있는지 몰랐다”며 “억울하고 어이없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지난 16일 세월호 집회 취재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슷한 일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기자에게 “어디 가냐, 집이 어디냐” 등을 물으며 “시민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묻는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며 관등성명을 요구하자 “53기동대”라고만 밝힌 다음 “기자라면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엄밀히 따지면 경찰의 직권남용”이라며 “경찰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집회 참여자들이 18일 오후 10시 광화문 광장에서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집회 참여자들이 18일 오후 10시 광화문 광장에서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얼굴 가리고 이름표도 없는 경찰, 경찰 맞니?

집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은 딱히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지난 11일과 16일, 18일 세월호 집회를 관리한 경찰들이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소속된 부대를 확인할 수 있는 깃발이 있었으나 이는 개개 경찰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얼굴을 가리고 이름표도 없는 경찰, 정말 경찰이 맞는지, 경찰인지 용역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0년 한국을 방문해 조사 활동을 벌인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법집행 공무원들에게 명찰, 군복 등 기타 신분확인이 부착되지 않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공무원들이 과잉무력을 사용할 경우,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 같은 지적에 “경찰들 개인의 인권도 고려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름까지 알려지면 인권을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경찰의 위법적인 행동들을 당장에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2008년에도 경찰의 과잉진압 등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이 고소고발을 진행했지만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며 “경찰을 조사하는 주체가 경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과잉진압이나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며 “승소 가능성 등을 따져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현재 체제는 경찰이나 검찰 조사로 경찰이 처벌받기는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따라서 지난 18일 집회처럼 경찰이 위법을 저지른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 정치가 나서서 경찰청장이나 행자부 장관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당시 집회에 참가했던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안행위 23일 전체회의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